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향해 ‘부패한 이너서클’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관치금융을 막기 위해 자율성을 확대했지만 그 자리를 소수 내부 인사의 폐쇄적인 권력구조가 대신했다는 문제의식이다.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과 CEO 승계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왔다. 딜사이트는 금융지주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승계되는지, 이를 견제할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국내 금융지주 회장의 힘은 인사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너가 지배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주요 금융지주는 경영권을 행사할 뚜렷한 지배주주가 없는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의 분산소유 구조다. 견제할 지배주주가 없는 공백을 이사회와 전문경영인 체제가 메우는 구조지만 그 과정에서 그룹 경영의 정점에 있는 회장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지주와 주요 계열사의 CEO·임원 선임에는 이사회와 각종 후보추천위원회 등 공식적인 절차가 존재한다. 회장이 특정 인물을 임의로 CEO에 앉힐 수 있는 구조는 아니지만 의중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금융권에서 문제로 지적하는 지점은 최종 선임에 이르기 전 단계다. 누가 핵심 계열사와 주요 사업부문의 경영 경험을 쌓느냐에 회장의 인사 판단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경력이 향후 차기 회장 후보를 평가하는 주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배구조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주요 금융지주에서 회장의 인사 영향력과 최고경영자(CEO) 승계 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은 그룹 전체의 사업 방향과 계열사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최고경영자인 만큼 주요 인사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은행장이나 주요 계열사 CEO는 각사의 행장(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이사회 등 정해진 절차를 거쳐 선임되지만, 그룹 차원의 후보군 관리와 주요 경영진에 대한 평가는 지주 경영진과 완전히 분리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부문장이나 주요 사업그룹장 등 그 아래 핵심 보직으로 내려가면 회장의 인사 영향력은 더욱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부 인사평가와 후보군 관리 절차가 존재하더라도 최고경영진의 판단이 인사에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장이 특정 인물을 핵심 보직에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할 경우 이를 거스르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구조는 하마평조차 없던 인물이 갑자기 핵심 계열사 대표나 주요 보직에 선임되는 ‘깜짝 인사’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마평에 없던 인물이 주요 보직에 발탁될 때마다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라는 해석이 뒤따르며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인사부서에서 후보군을 관리하더라도 누가 핵심 보직을 맡느냐에는 회장의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며 “회장이 특정 인물을 영입하거나 주요 보직에 배치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면 인사부서가 이를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사권이 지배구조 논란으로 이어지는 지점은 당장의 보직보다 이후의 CEO 승계 과정이다. 금융지주 회장 후보를 평가할 때 은행장이나 주요 계열사 CEO, 지주 핵심 부문장 등을 거치며 쌓은 경영 경험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현직 회장이 재임 기간 특정 인물을 주요 보직에 잇달아 배치한다면 해당 인물은 자연스럽게 차기 회장 후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경력을 축적하게 된다.
반대로 핵심 보직을 경험하지 못한 내부 인사는 승계 프로그램에 포함돼 있더라도 경영 경험과 성과를 증명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 회장이 차기 회장을 직접 선택하지 않더라도 인사를 통해 ‘누가 유력한 차기 후보가 될 수 있는지’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CEO 승계 프로그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상당수 금융지주는 상시적인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후보군을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승계 프로그램에서 후보를 평가하기 이전에 후보자들이 어떤 보직을 거치며 어떤 경영 성과를 쌓을 기회를 얻었는지도 공정성의 영역에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후보가 은행장과 핵심 계열사 CEO, 지주 주요 부문 등 요직을 연이어 맡는다면 승계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경영 경험과 성과를 자연스럽게 축적할 수 있다. 반면 주요 보직에서 벗어나 있던 후보는 같은 내부 후보군에 속해 있더라도 출발선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승계 프로그램의 객관적인 평가 기준만큼 후보들의 경력을 만드는 인사 과정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 제기되는 ‘참호 구축’ 논란도 단순히 현직 회장이 연임하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회장이 장기간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자신과 호흡을 맞춘 경영진이 주요 계열사와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이들이 다시 차기 경영진 후보군의 중심을 형성한다면 내부 권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회장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의 독립성 역시 같은 문제와 연결된다. 금융지주 회장 후보를 추리고 평가하는 역할은 사외이사가 중심이 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담당한다. 제도상 현직 회장이 자신의 연임 여부나 후임자를 직접 결정할 수는 없다.
사외이사 역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와 주주총회 등 정해진 선임 절차를 거친다. 문제는 현직 경영진과 장기간 호흡을 맞춘 이사회가 회장의 연임과 차기 후보를 판단할 경우 형식적인 독립성과 실질적인 견제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외이사의 재선임이 반복되면서 현직 경영진과 이사회의 관계가 고착될 경우 회추위가 충분한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셀프 연임’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다.
회장에게 집중된 인사 영향력과 이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의 독립성 문제가 맞물리면서 금융지주의 CEO 승계는 단순히 최종 후보를 누가 선택하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주요 보직 발탁부터 후보군 관리, 경영성과 평가, 회추위의 최종 검증까지 이어지는 전체 과정이 현직 회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으로 작동하느냐를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 ‘주인 없는 회사’에서 어떻게 회장의 권한을 견제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규제가 정교해지더라도 회추위와 사외이사회가 현직 회장으로부터 실질적인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건은 회장의 인사권과 CEO 승계 절차 사이에 적절한 견제 장치를 두는 데 있다. 회장이 경영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인사권을 행사하되, 그 결과 만들어진 후보군을 평가하고 차기 회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이사회와 회추위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회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보다 인사와 승계의 각 단계가 현직 회장의 영향력과 얼마나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후보 발탁부터 주요 보직 배치, 평가와 최종 선임까지 이어지는 경로 자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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