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넘어섰다. 지난해 4월 9일 2293.70 포인트에서 출발한 지수는 올해 6월 19일 장중 9,385.59 포인트까지 오르면서 4.09배, 309% 상승했다. 하지만 코스피 1만의 문턱에서 고꾸라진 지수는 7월 한 달 새 5500선까지 밀렸고 변동성 지수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섰다. 급락했던 시장은 7000선을 회복했지만 그 사이 두 가지가 확인됐다. 레버리지 투기수요와 외국인, 기관의 수급은 1만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그 사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기업 이익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다시 고지를 노려볼 것이냐에 집중된다. 퇴직연금이 바꿔놓은 수급 지형, 반도체 이익 사이클, 글로벌 자본의 달라진 시선, 자본시장 체질개선, 정책자금의 유입까지 코스피 1만을 향한 긍정적인 요소들은 충분하다. 대한민국 증시가 선진 시장의 증표로 받아들일 1만피의 조건을 점검한다.
[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코스피 5000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이재명 정부는 집권 1년이 지나지 않아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자본시장 정책의 방점을 시장의 체질개선에 찍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복잡한 지배구조와 미흡한 주주환원 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과 반도체, 인공지능(AI) 방위산업 섹터의 조화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던 코스피는 7~8월 사이에 급락하며 지수 급등이 신기루가 아니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섣불리 허용했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악영향을 미친 것은 여론을 주가상승이 이뤄지기 전보다 나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코스피 상승이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 상승 국면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공시를 마친 기업은 747곳으로, 이들의 시가총액은 전체의 84.6%에 달한다. 급락장에 가려졌지만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흐름은 꾸준히 진행돼 왔다는 의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하락 폭이 워낙 커 가려지긴 했지만 코스피의 역사적 수준을 고려하면 과거와는 체급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체질개선 노력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핵심 축은 세 차례에 걸친 상법개정이다. 지난해 7월과 8월에 걸쳐 이뤄진 1·2차 개정은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을 지배주주에서 전체 주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사회의 충실의무 대상을 단순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했고, 규모가 큰 기업은 필수적으로 집중투표제를 시행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을 최소 2명 이상 분리 선출하도록 했다.
3차 개정안은 무게중심을 지배구조 개선에서 주주환원으로 옮겼다.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명시한 조항이 골자다. 자사주를 장기 보유하면서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취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두 번에 걸친 상법개정은 2025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코스피 상승에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며 “코스피가 계속 상승하려면 3차 상법 개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상법의 개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기 위한 민관 합작 노력의 결과물이 될 수 있다. 통상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통해 주주환원을 꾀한다. 애플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체 주식 수의 약 39%에 달하는 100억 주 이상을 매입해 소각했다. 이 기간 애플 주가는 10배 이상 상승했다. 엔비디아 역시 지난 5월 800억달러(112조8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해 시장과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는 기대에 못미치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난 24일 증시에서 뭇매를 맞으며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이 국내 기업들의 주주환원책과 그 원칙의 실행을 담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체질개선의 한 축이다. 상장사가 스스로 기업가치를 진단하고, 목표 주가와 이를 달성할 시점과 방안 등을 계획한 후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프로그램 참여는 기업 판단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지만, 정부는 세제지원과 평가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내걸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한국거래소도 이런 맥락에서 제도의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6월 코리아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을 밸류업 공시 기업 위주로 전면 개편했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했다.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투자 창구를 열어주고, 지수 편입 기업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자체가 시장에서 재평가받을 모멘텀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밸류업 공시를 마친 기업은 747개 기업으로 집계됐고, 공시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전체의 84.6%에 달한다.
또 다른 한 축은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지적한 중복상장 규제다. 금융위원회와 거래소는 8월 들어 중복상장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 방식의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 영업독립성, 경영독립성, 투자자 보호 요건 등을 모두 충족해야 자회사 상장이 허용된다. 물적분할로 설립된 경우 모회사 주주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3%를 초과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하면서 소액주주 의견을 반영하도록 했다.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과거 상장사가 핵심 사업부를 분할한 뒤 자회사를 따로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권익이 훼손되는 문제가 반복됐다. 또 모회사와 자회사의 이익이 중복 계상되는 구조로 인해 코스피 자체도 저평가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은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11.2%에 달한다. 미국(0.05%), 중국(2.4%), 대만(2.7%), 일본(4.0%) 등보다 높다.
다음 과제로 거론되는 건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다. 최대주주가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행위를 겨냥한 대책이다. 고의로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을 미루고 기업가치를 훼손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는 지금보다 최소 30% 높은 주식 평가액을 적용해 세금을 물리는 게 요지다. 의도 자체는 시장 체질개선에 부합한다는 평가지만,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좁고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최근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최종 윤곽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다만 디스카운트 해소만으로 구조적 상승 국면이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할인 요인을 지우는 작업 다음에는 코리아 프리미엄을 만드는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생산적 금융 전환,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이라는 3대 중점 추진 전략의 가시적인 진전과 함께 후속 조치도 이행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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