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민 기자] 올해 초 시행된 인공지능(AI)기본법의 생성물 표시의무가 게임 콘텐츠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AI를 보조도구로 활용하는 경우부터 이용자가 AI NPC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경우까지 활용 방식이 제각각인 데다, 게임 화면을 캡처하거나 플레이 영상을 공유하는 행위까지 표시의무가 적용되는지를 두고도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다. AI 활용 여부만을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규율하기보다 이용자에게 AI 기능이 직접 제공되는지와 게임 콘텐츠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법인 화우는 18일 서울 강남구 화우연수원에서 ‘인공지능기본법과 AI 생성물 표시의무, 국내외 게임 및 AI 기업의 대응은?’을 주제로 제14회 게임 대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담회의 핵심 쟁점은 게임사가 AI를 ‘어디에, 어떻게’ 활용했을 때 표시의무를 부담하느냐였다. AI기본법은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해당 서비스가 AI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리고, 결과물이 AI로 생성됐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규정한다.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이미지·영상도 이용자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고지해야 한다.
게임에서는 AI를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 표시의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AI 제품이나 서비스가 최종 이용자에게 직접 제공되는지 여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투명성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게임 제작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개발 도구로 활용하는 게임사는 원칙적으로 AI ‘이용자’에 해당한다. 반대로 이용자가 게임 안에서 AI와 직접 상호작용하거나 AI가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기능을 제공하면 게임사가 ‘인공지능이용사업자’로 판단될 가능성이 커진다.
예컨대 게임사가 AI를 활용해 그래픽이나 음성을 제작하더라도 AI 기능 자체가 이용자에게 직접 제공되지 않는다면 표시의무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안이나 서버 운영 최적화 등 이용자가 인식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사용되는 AI도 마찬가지다.
정호선 화우 변호사는 게임사의 표시의무를 판단할 때 AI 기술의 포함 여부보다 이용자에게 직접 AI 기능이 제공되는지를 우선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구축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표시의무를 부과하면 기업이 자체 AI 개발을 꺼릴 수 있다”며 “최종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게임 서비스가 AI에 기반해 작동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시의무가 발생하더라도 게임 안에서 이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해야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사전 고지와 결과물 표시는 서로 다른 의무이기 때문에 약관이나 플랫폼에서 AI 사용 사실을 안내한 것만으로 모든 의무가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가령 게임 안에서만 AI 결과물이 제공되는 경우에는 AI NPC의 명칭 주변에 관련 내용을 표시하거나 이용자가 최초로 대화를 시작할 때 AI가 활용된다는 사실을 안내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결과물이 게임 밖으로 제공될 때는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시나 메타데이터·디지털 워터마크 등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게임업계에서 보다 복잡한 문제는 AI 생성물이 게임 밖으로 나가는 ‘외부 반출’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다. AI NPC와의 대화가 포함된 게임 화면을 이용자가 캡처하거나 플레이 영상을 녹화해 공유하는 행위까지 AI 결과물의 외부 제공으로 볼 수 있는지는 현행법상 명확하지 않다.
정 변호사는 이에 대해 “스크린샷이나 영상 일부에 AI 생성물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전체 화면에 표시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가 외부에 공유하려는 대상은 AI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 장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해석이 폭넓게 적용될 경우 게임 이용 과정에서 AI 표시가 지나치게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게임은 이용자가 처음부터 가상 세계임을 알고 향유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위한 표시의 필요성이 뉴스나 광고 등 다른 콘텐츠와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AI NPC의 대사와 행동마다 표시를 반복하면 현실과의 혼동을 막는 효과보다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현실 정보와의 오인 가능성은 뉴스·광고와 게임에서 성립하는 기반이 각각 다르다”며 “산업과 콘텐츠의 특성을 고려한 차등적인 규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 개정에 앞서 과기정통부 고시나 게임산업 특화 가이드라인을 통해 AI 활용 방식별 표시의무와 외부 반출의 범위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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