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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엔 112만원, 손에는 25억 회사…이렘의 'CB 묘수'
박준우 기자
2026-08-14 08:00:00
원픽이앤씨 인수대금 전액 전환사채 지급…풋옵션 없이 유동성 부담 최소화
이 기사는 2026-08-13 15:06:08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26년 7월부터 국내 증시의 상장 유지 문턱이 한층 높아졌다. 코스피는 시가총액 300억원, 코스닥은 200억원 미만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기준이 적용되고, 동전주 퇴출 요건 강화 등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한 제도 개편도 본격 시행된다. 상장사들은 기업가치 제고와 사업 재편, 투자 유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강화된 상장 유지 기준 시행에 맞춰 상장사들이 내놓은 생존 전략과 그 실효성을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박준우 기자] 시장 퇴출 압박을 받고 있는 코스닥 상장사 '이렘'이 현금을 거의 들이지 않고 25억원 규모의 M&A(인수합병)에 나선다. 1분기 말 현금성자산이 112만원에 불과한 상황에서 인수대금을 신규 발행 전환사채(CB)로 지급하는 거래 구조를 짰다. 특히 해당 CB에는 투자자의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부여하지 않은 반면 이렘이 되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은 50%까지 확보했다. 신사업을 확보하면서 당장의 현금 유출은 물론 향후 조기상환에 따른 유동성 부담까지 최소화한 셈이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렘은 최근 비상장사 원픽이앤씨를 25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원픽이앤씨 기존 주주인 샘앤솔과 솔빛일렉트릭으로부터 구주 3만주(100%)를 취득할 예정이다. 취득예정일은 이달 18일이다.


이렘, 원픽이앤씨 지분 취득 현황. (그래픽=김민영 기자)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수대금 지급 방식이다. 이렘은 원픽이앤씨 지분을 넘겨받는 대가로 현금 대신 새로 발행하는 25회차 CB 25억원어치를 샘앤솔과 솔빛일렉트릭에 지급한다. 사실상 메자닌을 현금 대용으로 활용해 M&A를 성사시키는 구조다.


이 같은 거래 구조를 택한 배경에는 이렘의 빠듯한 유동성 사정이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이렘의 현금성자산은 112만원에 그친다. 현금으로 25억원의 인수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CB를 활용해 당장의 자금 부담 없이 원픽이앤씨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CB 조건 역시 이렘의 단기 현금 유출 가능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번 CB에는 투자자가 만기 전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풋옵션이 부여되지 않았다. 주가가 하락해 전환 실익이 떨어지더라도 원픽이앤씨 기존 주주들이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이렘은 CB 만기 이전까지 조기상환에 따른 현금 유출 부담을 피할 수 있다.


반대로 이렘에는 CB 발행액의 50%를 되사들일 수 있는 콜옵션이 부여됐다. 투자자의 조기상환 권리는 제한하면서 향후 일정 물량을 회수할 수 있는 선택권은 확보한 것이다.

이렘이 유동성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다시 M&A 카드를 꺼내든 시점도 주목된다. 회사가 시가총액 요건 미달로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에 직면해 있어서다. 현재 이렘의 시총은 184억원으로 코스닥 상장 유지 기준인 200억원을 밑돌고 있다. 지난 12일 기준 19거래일 연속 시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달 27일까지 시총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수 있다.


현재 추진 중인 113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가 변수다. 신주 상장 이후 현재 수준의 주가가 유지된다는 단순 가정 아래에서는 발행주식 수 증가에 따라 시총이 200억원선을 웃돌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일시적으로 기준을 넘어서는 것만으로 상장 유지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관리종목 지정 이후에도 일정 기간 시총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데다 내년부터는 관련 기준이 300억원으로 상향되기 때문이다.


시장 퇴출 압박이 커진 상황에서 사업다각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필요성도 한층 높아진 셈이다. 강관·스테인리스 사업을 영위하는 이렘은 최근 3년 동안 신사업 확보에 공을 들였지만 아직 뚜렷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우선 2023년 8월 바나듐 2차전지 기업 엑스알비 지분 약 29%를 10억원에 취득하며 BESS(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 사업에 발을 들였다. 해당 사업은 아직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도 관련 매출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어 2024년 1월에는 전 최대주주인 코스틸로부터 슈퍼데크 사업을 479억원에 양수했다. 당시 인수대금 대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한 만큼 사업 성과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인수 이후 이렘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2023년 말 10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4년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에도 2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렘, 25회차 CB 발행 개요. (그래픽=김민영 기자)

원픽이앤씨 인수가 당장 이렘의 실적을 큰 폭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원픽이앤씨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와 공장 지붕형 태양광 설비를 설계·시공하는 EPC 업체다. 지난해 매출은 95억원, 순이익은 3억원 수준이다. 이렘의 적자 구조를 단기간에 뒤집을 정도의 이익 규모는 아닌 셈이다.


사업적 연결고리는 존재한다. 태양광 발전설비의 구조물과 지지대에는 강재가 사용되는 만큼 이렘의 기존 강관·스테인리스 사업과 원픽이앤씨의 태양광 EPC 사업을 연계할 여지가 있다. 이렘이 원픽이앤씨에 관련 소재를 공급하고 이를 태양광 구조물 등에 활용한다면 내부 조달을 통한 원가 절감과 매출처 확대 등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향후 실제 내부거래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이번 CB 거래가 이렘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인 것은 아니다. 원픽이앤씨 기존 주주들은 풋옵션을 포기하는 대신 만기수익과 주가 상승에 따른 전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해당 CB의 만기이자율은 4%이며 만기상환율은 원금의 122%로 설정됐다. 만기까지 전환하지 않을 경우 25억원의 원금에 약 5억5000만원이 더해진 30억5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주가가 상승하면 전환권 행사를 통한 차익 실현도 가능하다. 전환가액은 2130원이며 주가 하락 시 전환가액을 최대 1491원까지 낮출 수 있는 하방 리픽싱 조항도 포함됐다. 풋옵션 부재로 투자자가 떠안는 조기 회수 제약을 만기수익과 전환권, 리픽싱으로 일부 보완한 구조로 볼 수 있다.


이렘은 당장의 현금 투입 없이 신사업을 확보하고 CB 조기상환 부담까지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기존 사업다각화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원픽이앤씨의 이익 규모도 크지 않은 만큼 이번 M&A가 실제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내년 시총 기준이 300억원으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원픽이앤씨와의 사업 시너지를 얼마나 빠르게 실적으로 연결할지가 상장 유지 불확실성을 낮추는 핵심 과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딜사이트는 원픽이앤씨 인수와 CB 대용납입 구조를 결정한 배경을 확인하기 위해 이렘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렘 관계자는 "IR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이후 IR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본사에도 재차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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