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진욱 기자] 애플이 중국 최대 메모리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D램 공급 협상을 벌였지만 가격 이견으로 계약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모인다.
7일 중국기금보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 등 스마트기기의 제조 원가를 낮추기 위해 CXMT와 저전력 D램(LPDDR5X) 등 모바일 D램 공급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양측이 가격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최종 계약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중심의 D램 공급망에 CXMT를 추가해 공급업체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려 하며 논란이 됐다. 미국 정부에서 조차 CXMT 메모리 사용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하지만 중국 업체가 기존 공급사를 대체할 만큼 낮은 가격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애플도 못 낮춘 D램 가격…빅3 협상력 유지
애플이 CXMT를 찾은 배경은 최근 급등한 메모리 가격때문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메모리 시장 세계 1~3위을 차지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생산능력을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에 우선 배정했다.
강민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HBM은 범용 D램보다 웨이퍼 투입량이 3~4배 많고 가격은 DDR5보다 4배 이상 높다. 메모리 업체 입장에서는 한정된 생산능력을 HBM에 먼저 배정할 수 밖에 없다. 범용 D램의 공급 쇼티지로 판매자의 가격 협상력은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CXMT이 애플을 잡기 위해 가격을 크게 낮출 필요가 없어졌다. 강민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CXMT의 올해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지난해보다 22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비트 생산량 증가율은 53%로 예상했다. 생산량보다 가격 상승이 실적 개선을 주도한다는 의미다.
CXMT의 기가비트당 ASP도 지난해 0.35달러에서 올해 1.13달러로 세 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DDR4·LPDDR4X에서 DDR5·LPDDR5X 등 고부가 제품으로 제품 구성이 바뀌는 효과도 반영됐다.
애플과 CXMT의 협상 결렬은 현재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존 공급업체가 상당한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산 ‘저가 공세’ 당장은 제한적
한국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CXMT가 당장 저가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흔들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CXMT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 선단공정에서는 격차가 있다. 강민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CXMT의 DDR5 수율이 2024년 말 80%를 넘어서며 선두 업체 수준에 근접했지만 공정 기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보다 3~4년 뒤처진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로 극자외선(EUV) 공정 전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HBM에서는 격차가 더욱 크다. CXMT는 HBM2에서 HBM3·HBM3E로 제품을 확대하고 있지만 EUV 장비 없이 HBM4에 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초기 HBM 수율도 낮아 실적 기여가 본격화되는 시점은 2028년 이후로 전망됐다.
따라서 CXMT가 가격을 크게 낮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을 즉시 훼손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가격 아닌 중국시장 잠식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CXMT의 가장 큰 위협은 가격 덤핑보다 빠르게 늘어나는 생산능력과 중국 내수시장 점유율이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관련 보고서에서 CXMT의 글로벌 D램 출하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약 3%에서 올해 1분기 8%까지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은 세계 4위다. 글로벌 메모리 3사가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발생한 범용 D램 공급 공백을 CXMT가 빠르게 흡수한 결과다.
특히 중국은 세계 D램 수요의 약 25%를 차지하지만 자급률은 30% 안팎에 불과하다. 신한투자증권은 CXMT가 생산능력을 늘리더라도 신규 물량 상당 부분이 중국 내 수입 대체 수요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 글로벌 D램 가격 하락보다 더 현실적인 위험이다. CXMT가 중국 스마트폰·PC·서버 업체에 공급을 늘릴수록 한국 업체가 차지하던 중국 시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27~2028년이 분수령
CXMT는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업게에서는 월간 웨이퍼 생산능력이 올해 말 약 31만장에서 2027년 말 38만장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신한투자증권은 2028년에는 월 50만장 수준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재로서는 이 물량이 중국 내수에 흡수되면서 글로벌 D램 공급과잉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신한투자증권도 CXMT 증설을 2028년 D램 공급과잉의 직접적인 근거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애플과 CXMT의 협상 결렬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당장은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 기업인 애플조차 기존 메모리 공급망을 흔들 만큼 싼 중국산 D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CXMT가 높은 D램 가격으로 확보한 이익을 증설과 공정 개선에 재투자하고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한국 반도체 업체의 진짜 위협은 당장의 ‘중국산 저가 공세’보다 CXMT가 가격 결정력에 원가 경쟁력까지 갖추기 시작하는 2027~2028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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