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삼성전자가 대표이사 직속 로봇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휴머노이드 사업에 승부수를 던졌다. 이를 통해 흩어져 있던 로봇 인력과 기술, 데이터를 한데 모아 제조 현장용 휴머노이드의 개발과 사업화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관건은 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의 부품 역량과 자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원천기술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는지다. 휴머노이드에는 다양한 기술이 집약된 만큼 개별 기술력보다 이를 하나의 제품으로 통합하고 최적화하는 역량이 사업화 속도와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노태문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속 ‘RX(Robotics eXperience)사업추진실’을 신설했다. 삼성전자는 RX사업추진실을 통해 제조·물류 현장을 중심으로 핵심 기술과 데이터를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RX사업추진실은 그동안 전사적으로 축적한 로봇 관련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일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로봇 연구 인프라 역시 확대한다. 삼성전자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연구개발(R&D) 캠퍼스를 거점으로 삼아 로봇 관련 인력의 근무지를 통합한다. 또한 구미사업장에 로봇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해 로봇 학습에 활용할 계획이다.
로봇을 제조 현장에 투입하려면 다양한 제조 환경을 학습해야 하는 만큼 구미사업장의 제조 현장 데이터를 접목하고 서울 R&D 캠퍼스 조직과 연계해 로봇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미국·중국·일본 등 로봇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역에는 연구 거점도 설립한다.
이번 조직에는 그동안 삼성전자가 추진해온 로봇 사업화 전략의 노하우가 축적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1년 로봇사업화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로봇 사업화에 나섰다. 이후 로봇사업화 TF를 상설 조직인 로봇사업팀으로 격상하고 ‘삼성 봇 아이’ 등을 공개했다.
다만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인 ‘봇핏’과 가정용 로봇 ‘볼리’의 상용화가 지연되면서 2024년 조직을 해체·개편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대표이사 직속 미래로봇추진단을 설립하면서 로봇 개발의 방향성을 휴머노이드로 전환해왔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볼리 등 가정용 로봇에서 산업용 휴머노이드로 개발축을 옮긴 배경으로 로봇의 대중적인 상품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꼽힌다. 이에 현재 수요가 가장 뚜렷한 시장을 우선 공략하려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분석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봇은 기술 시연과 실제 상품화 사이 간극이 크고, 소비자 시장에서는 가격·안전·사용성·서비스 생태계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며 “향후 사업화 순서는 제조 현장용 로봇을 먼저 개발한 뒤 홈과 리테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재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인 LG전자 역시 로봇을 신사업으로 낙점하고 최고경영자(CEO) 직속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하며 로봇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LG전자는 조직 개편을 통해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사업 개발과 영업,운영 기능을 갖춘 사업 조직으로 운영하고 LG그룹 계열사와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생활가전과 TV의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칩플레이션으로 모바일 사업의 수익성까지 악화하자 양사는 새로운 돌파구로 로봇 사업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히 기존 사업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을 넘어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그룹의 장기적인 생존과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인공지능(AI)이 디지털 공간을 넘어 현실 세계에서 직접 판단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차세대 산업 전환을 주도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를 구현할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향후 휴머노이드가 새로운 산업혁명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시장 선점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휴머노이드가 산업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며 “양사의 로봇 사업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업 부진을 만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기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경쟁력으로 꼽힌다.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주요 부품을 그룹 내부 공급망을 통해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계열사 간 기술 협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개발 경험과 원천기술을 축적해온 자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도 로봇 사업을 확대하는 데 강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산업용 휴머노이드 개발을 목표로 지난 7월 피지컬 AI 기업인 투모로로보틱스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거래 규모도 지난해 1분기 7억원에서 올해 24억원으로 늘며 양사 간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2024년 미래로봇추진단을 설립하면서 레인보우로보틱스 연구원 50명으로 구성된 ‘S&R 휴머노이드팀’을 가동해 휴머노이드 원천기술 확보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레인보우로보틱스 간 화학적 결합이 로봇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반도체·부품·AI·소프트웨어 역량과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이 별도로 움직이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삼성전자와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따로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시너지를 내는지에 따라 보유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것”이라며 “계열사들이 어떻게 하나로 뭉쳐 움직이는지에 따라 로봇 시장에 진입하는 속도와 사업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내 계열사 간 역할 조정도 필요하다. 로봇은 수많은 부품이 결합된 ‘종합 산업’이다. 기존에 계열사들이 스마트폰과 가전, 자동차용으로 공급하던 모터·센서·디스플레이 등의 부품이 향후 로봇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RX사업추진실의 조정 능력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그룹 내 시너지”라며 “가전, 스마트폰, 자동차에 공급하던 부품들은 로봇에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계열사의 장점을 잘 묶어서 완제품으로 잘 만드는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경쟁이 이미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진입 부담이 크다. 테슬라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로봇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개발과 양산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제품을 다수 공개한 중국 유니트리의 경우 상하이 커촹반 상장을 통해 42억위안 규모의 자금을 조달해 로봇 신제품 개발과 인공지능 모델 고도화, 스마트 제조기지 구축에 투입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로서는 조직과 인력을 갖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 현장에서 로봇을 검증해 작업 데이터와 양산 경험을 빠르게 축적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시장 진입을 늦출 수는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휴머노이드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현재의 기술 격차가 향후 경쟁 구도를 그대로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사실상 모든 산업이 중국의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라면서 “중국 등 해외 기업들이 앞서고 있다고 해도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만큼 사업을 시작해 빠른 시일에 성과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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