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 지분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함께 투자했던 베인캐피털이 엑시트를 마무리하면서 SK하이닉스는 잠재 지분을 남긴 사실상 유일한 전략적 주주가 됐다.
투자 원금은 회수했지만 키옥시아 지분이 실적과 전략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자산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략적 레버리지 대상으로 계속 보유할지, 적절한 시점에 회수할 지를 둘러싼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외수익은 전년 동기 4910억원 손실에서 62조2166억원 이익으로 흑자 전환했다. 기타영업외순이익이 60조8890억원을 기록하며 투자자산 매각·평가이익 등이 반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베인캐피털의 키옥시아 지분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투자이익과 키옥시아 지분 가치 상승도 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키옥시아 지분이 이제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산을 넘어 SK하이닉스 실적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자산으로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 SK하이닉스는 2018년 옛 도시바메모리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해 펀드 출자(2조6371억원)와 전환사채(CB) 인수(1조2789억원)를 합쳐 총 3조9160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베인캐피털이 보유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하면서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투자 원금을 사실상 모두 회수했고 지난 6월 베인캐피털이 남은 지분까지 전량 처분하면서 사실상 유일한 전략적 투자자로 남게 됐다.
현재 SK하이닉스는 SPC2가 발행한 CB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최대 14.17%의 키옥시아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도시바가 보유 지분을 지속적으로 줄이면서 해당 지분은 최대주주 도시바와의 격차가 크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투자 원금은 회수했지만 전략적 선택지는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다만 보유한 CB를 주식으로 전환한다고 곧바로 의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키옥시아가 영위하는 반도체 사업은 일본 외환법(FEFTA)상 외국인 투자 사전심사 대상 업종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가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의결권을 확보하려면 일본 정부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하며 글로벌 낸드 시장의 경쟁사인 만큼 각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변수로 꼽힌다.
투자 당시에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경영 참여를 우려한 일본 정부와 도시바는 2028년까지 의결권을 15% 이하로 제한하고 이사 선임과 기밀정보 접근 등을 제한하는 조건을 뒀다.
키옥시아도 최근 증권보고서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의결권 행사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와 다를 수 있다”고 언급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2028년 이후 일부 제한이 완화되더라도 일본 정부의 심사와 경쟁당국 규제 등을 고려하면 지분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지분을 처분하기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해 솔리다임을 출범시키며 낸드 사업을 확대했고 키옥시아 역시 글로벌 낸드 공급망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영권과는 거리를 두더라도 주요 주주라는 위치 자체가 장기 공급 계약이나 산업 재편 과정에서 전략적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시장 환경은 오히려 SK하이닉스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키옥시아 주가는 최근 미국 비아샛 특허소송 패소와 낸드 업황 둔화 우려 등이 겹치며 고점 대비 50% 넘게 하락했다. 아울러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며 메모리 업계의 경쟁 구도 변화 우려를 키웠고 공교롭게도 베인캐피털의 지분 매각 소식 자체가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과 기술주 랠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매도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패닉을 키웠다는 해석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분을 쥔 회사의 주가가 자신이 속한 업종 전반의 조정 심리에 함께 휩쓸린 셈이다.
여기에 낸드 업황 둔화 우려까지 커지면서 보유와 엑시트 사이에서의 고민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키옥시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3위 업체로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기업용 SSD(eSSD) 수요 증가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올해 1분기만 봐도 13.9%의 시장 점유율로 3위 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2027년 3분기부터 낸드 TLC·QLC 웨이퍼 계약가격이 하락 전환해 3분기 9.4%, 4분기 15.4%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기업용 SSD 수요는 늘겠지만 빅테크의 SSD Bit 출하량 증가율이 둔화하는 반면 삼성전자 시안 팹과 키옥시아 K2 팹, SK하이닉스 대련 팹, YMTC 신규 팹 등의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공급 증가 폭이 수요를 웃돌 것으로 분석했다. 이 경우 낸드 업황에 민감한 키옥시아 기업가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주가 조정은 2027년 하반기 낸드 가격 하락 가능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며 “낸드 공급초과율은 2026년 1분기 –(마이너스) 10.8%에서 2027년 3분기 1.1%, 4분기 12.2%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3분기에는 키옥시아 지분이 SK하이닉스 실적에 반대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분기에는 키옥시아 지분 가치 상승 등이 대규모 영업외이익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지만 최근 주가가 고점 대비 50% 가까이 하락하면서 3분기에는 상당 규모의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평가이익이 평가손실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면서 키옥시아 지분을 전략적 레버리지로 계속 남겨둘지, 매각을 통해 차익을 확정할지를 둘러싼 SK하이닉스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도 선택지를 열어둔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SK하이닉스 ADR 상장 행사에서 “현재로선 키옥시아 투자분을 더 회수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전략적 레버리지로 쓸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2분기 영업외 손익은 키옥시아 SPC1 매각 관련 이익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최태원 회장의 ‘전략적 레버리지 활용’ 발언은 단순히 투자 수익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 공급망이나 사업 협력, 기술 협력 등 다양한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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