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변한석 기자] 유료방송(SO) 시장이 콘텐츠 비용 부담과 규제 불균형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MPP의 계열 채널 묶음 거래와 중복편성으로 SO의 선택권이 제한되는 가운데 과거 SO의 거래상 우위를 전제로 마련된 채널 거래 규제가 변화한 시장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SO의 적자 심화와 지역채널 위축 상황이 이어지면서 채널 거래 구조를 포함한 유료방송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성진 숭실대학교 교수는 지난 30일 열린 ‘유료방송 채널거래 시장 개선 방안 마련’ 세미나에서 MPP 5곳의 최대 중복편성률은 80%가 넘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MPP는 하나의 채널 사업자가 SO·IPTV 등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채널을 공급하는 멀티호밍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형 MPP의 콘텐츠 공급 영향력이 커지면서 SO와의 협상력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계열 채널을 묶어 판매하거나 동일 콘텐츠를 여러 채널에서 반복 편성하는 구조가 SO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콘텐츠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중복편성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복수 채널이 하나의 묶음으로 올라오는 게 문제”라며 “채널별 개별협상과 성과에 따른 대가 산정이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케이블TV협회에 따르면 SO의 총수신료 대비 콘텐츠 사용료 지급률은 2024년 90.2%로 상승했다. 일부 SO는 116.2%의 지급률에 달했다. 가입자로부터 받은 수신료를 모두 지급해도 콘텐츠 사용료를 채우지 못할 수준이라는 뜻이다. 반면 IPTV의 경우 콘텐츠 사용료 지급률이 45.8%에 불과했다. 동일한 콘텐츠를 송출해도 지급 비용이 두 배나 높은 것이다.
현재 SO 사업자는 매출 대부분인 90.2%를 프로그램 사용료로 지급하고 있다. SO의 수익은 시청자가 지불하는 시청료에서 나온다. 그러나 케이블TV의 사업매출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3.2% 감소했다. 매출 감소에는 IPTV와 OTT의 성장이라는 요인이 작용됐다. 그러나 매출 대비 지역채널의 제작비 비중은 매년 상승하고 있어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사실상 0%대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래된 가이드라인도 문제다. 한승혁 율촌 변호사에 따르면 MPP가 SO 채널에 묶음 계약 강요를 금지하는 조항은 이미 2012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SO가 PP에 대해 거래상 지위가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었다. 2024년 기준 케이블TV 전체 영업이익이 2015년 대비 96.3%이 하락한 상황이라 SO가 우월하다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현재는 PP와 MPP의 콘텐츠 공급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규제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끼워팔기’로 인한 콘텐츠 중복으로 시청차의 콘텐츠 선택권이 줄어드는 문제도 제기됐다. 시청자 선택권과 신규 진입이 축소되면 SO의 수익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풀뿌리 민주주의 지원과 지역 정체성 유지라는 역할을 가진 지역 SO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소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SO업계 관계자는 “SO는 지방선거 등 소규모 단위 지역의 공적 책무를 수행했다”며 “SO가 사라진다면 지역민의 시청권 저해 문제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미디어 시장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SO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오래된 채널 거래 규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SO는 PP와 채널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과 거래 공정성 관련 기준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OTT는 관련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같은 콘텐츠 사업자를 두고 SO와 OTT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SO만 과거 플랫폼 우월성을 전제로 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는 의미다.
변화한 시장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 체계는 SO와 PP 간 콘텐츠 사용료 협상 과정에서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SO업계는 꾸준히 정부에 합리적인 대가 산정 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SO의 PP 지급 사용료는 2024년 3277억원으로 4년 전과 비교해 6.4% 늘었다.
지급 사용료가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에서 매년 SO와 PP는 사용료 협의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LG헬로비전은 CJ ENM과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이 좁혀지지 않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콘텐츠 사용료 방송분쟁조정을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양사의 갈등은 방송분쟁조정위원회가 다루는 첫 사례가 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갈등이 콘텐츠 사용료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 SO는 가입자 감소와 수익성 악화에도 PP에 지급하는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PP 역시 제작 비용 증가 등을 이유로 대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사업자 간 협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객관적인 산정 기준과 거래 원칙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상 결렬 시 한쪽에게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사용료 지급 유예 등 대칭적 패널티가 필요하다”며 “MPP 역시 채널별 개별 계약 거부를 채널 종료 사유로 인정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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