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제안한 JB금융지주와 BNK금융지주의 234조원 합병안이 양사 이사회 거부로 일단 무산됐다. 얼라인의 요구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방금융의 고질적인 향토 온정주의 병폐와 리스크 관리 실패, 자본효율성 저하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행동주의 펀드 제안은 이번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본격적인 문제의식의 발현이 될 것으로 보인다. 5대 금융지주에 맞설 지방금융의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짚어본다.
[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BNK금융지주 총자산은 약 160조원대로 KB, 신한금융지주 연결 총자산이 각각 600조원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KB와 신한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및 적극적인 주주환원 확대를 바탕으로 PBR을 1배 이상으로 꾸준히 개선하고 있다. 그러나 BNK는 지역 경기 둔화를 감안하더라도 비은행 포트폴리오 부진 등이 심화하면서 고작 0.3~0.4배 수준의 극심한 저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BNK는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라는 2개의 지방은행을 통합하지 않고 동시에 보유하면서 각 은행별 부행장과 상무 등 고위 임원 자리가 중복 양산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자산은 중앙의 경쟁자들에 비해 20~25% 수준인데 임원 수가 시중은행을 웃도는 원인이 바로 이 때문이다.
BNK는 다수의 경영진이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임원을 겸직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지주사와 은행 자회사 간의 통합도가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BNK 이사회가 얼라인파트너스의 JB금융지주 합병 제안을 예정 시기보다 빠르게 거부한 것은 영호남 금융지주 통합보다는 내부 혁신에 의존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사회가 명확한 반대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노조와 지역사회의 우려를 명분 삼아 현재 지배구조를 고수하려는 것은 스스로의 개혁은 불가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체질 개선을 위한 합병 실익이 분명한 데다 정부의 지배구조 개혁 기조도 확고한데 비해 연임에 성공한 빈대인 회장 아래로 내부 임원들의 자리지키기 의지는 공고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BNK와 JB가 하나로 합쳐질 경우 단일 회장 체제 전환으로 경영권 일원화가 불가피하고 양사 임원 자리는 절반 이상 줄어들 공산이 상당하다. 과거 신한-조흥은행이나 하나-외환은행 합병 당시에도 조직 주도권과 임원 자리를 둘러싼 내부 진통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이사회가 명확한 반대 근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직위 상실을 우려한 현 경영진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BNK가 이례적으로 공개한 이사회 표결 결과는 이러한 내부 균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석 이사 8명 가운데 반대 5명, 찬성 2명, 기권 1명으로 반대가 우세했지만, 찬성과 기권을 합친 3명의 이탈표가 확인됐다. 거부 명분과 달리 이사회 내부에서도 합병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일부 형성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병 시 따라오는 인력·조직 조정을 둘러싼 내부 진통은 체질 개선을 위한 불가피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중복되는 임원 자리를 줄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을 다듬어 절약한 고정비가 결국 주주 환원과 회사의 체질 개선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사회 반대와는 달리 이번 합병 구상은 지방은행이 직면한 생존 위기를 규모의 경제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영남권(부산·경남)과 호남권(전북·광주)을 아우르는 대형 금융지주가 출범할 경우, 양사는 영업 권역이 겹치지 않아 자기잠식 리스크 없이 체급을 키울 수 있다. 이는 자금 조달 비용 절감, 중복 고정비 감축, 대규모 AI·디지털 투자를 가능하게 하며 MSCI 코리아 지수 편입을 통한 해외 자본 유치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라인이 제안한 모델 역시 4개 지역 자회사의 독립 법인격과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연합형 지주 형태다. 지방은행 본연의 지역 밀착형 금융 기능은 유지하되 최상단 지주만 합치는 구조이므로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오히려 커진 지주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지역 중소기업에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독과점 우려에 대해서도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호남 지방은행의 여수신 점유율은 다 합쳐도 전체 은행 시장의 6% 수준에 불과하다. 양사의 결합이 과점을 형성하기보다, 5대 시중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에 균열을 내고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지배구조 개혁 기조는 향후 판도를 뒤집을 핵심 변수다. 정부가 주주가치 극대화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구체적인 명분이나 설득력 있는 대안 없이 합병 검토를 거부한 이사회의 결정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자율적 논의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이어질수록 사외이사들의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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