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현금을 쌓은 SK하이닉스가 여의도 채권 시장과 증권사들의 단자 시장에서 큰 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단기 회사채 위주로 자금을 투입했다면 최근에는 투자 만기를 3년 물까지 늘리며 우량 회사채 매입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대형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3년 만기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그동안 신용등급 AA0 이상 우량채 가운데 만기 2년 이하 단기물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투자 범위를 넓힌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NH투자증권이다. NH투자증권은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을 차환하기 위해 50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해당 물량을 SK하이닉스가 전량 인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회사채를 발행한 삼성증권의 3년물 물량에도 SK하이닉스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삼성증권 수요예측에서 3년물만 유일하게 민평금리보다 낮은 금리에서 모집이 완료됐는데 SK하이닉스가 해당 트랜치에 대규모로 참여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회사채를 발행한 KB증권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KB증권이 2년물과 3년물로 나눠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두 만기 모두 SK하이닉스가 적극적으로 투자금을 넣었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투자 만기를 늘리는 것은 늘어난 현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현금이 빠르게 쌓이면서 은행 예금만으로는 자금을 소화하기 어려워지자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우량 회사채 직접 매입으로 눈을 돌렸고 여기에 투자하려는 자금 규모가 크다보니 3년물까지 만기를 늘렸다는 분석이다.
SK하이닉스의 자기자본은 2025년 말 기준 약 120조6000억원이며, 최근 2026년 1분기 기준으로는 약 164조3800억원까지 급증했다. 회사의 행보는 최근 위축된 회사채 시장에 상당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금리 상승 기조에 기관투자가의 투자 심리가 경직된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는 만 우량 발행사들의 조달 부담이 대폭 낮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사들의 수혜가 크다는 평가다. 최근 증시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신용공여와 유동성공급자(LP) 운용 등에 필요한 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어서다. 증권사들이 CP와 회사채 발행을 동반 확대하고 있지만 CP 시장의 경우 조달 물량이 짧은 기간에 몰리며 기관투자가의 한도 소진 우려가 커진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 SK하이닉스가 우량 회사채 물량을 잇달아 받아내면서 조달 수요가 높은 증권사들의 숨통을 확실히 터준 셈이다.
실제 증권사들의 회사채 발행량은 크게 늘었다. 올해 6월부터 7월 23일까지 회사채를 발행한 증권사는 KB증권(6400억원), 삼성증권(6000억원), NH투자증권(5900억원), 한국투자증권(5000억원), 신한투자증권(5000억원), 키움증권(4000억원) 등 6곳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NH투자증권(3000억원)과 신한투자증권(4000억원) 등 단 두 곳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참여사와 발행 규모 모두 눈에 띄게 증가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우량채로의 자금 쏠림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AA0 이상 우량 회사채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경우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의 소외 현상이 심화될 수 있어서다. 우량 기업은 낮은 금리로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는 반면 중·하위 신용등급 기업은 고금리를 제시하고도 미매각 리스크를 안는 양극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