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4대 금융지주가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기조에 발맞춰 역대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경영진의 신규 자사주 매입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 소각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라면, 임원 자사주 매입은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수단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 임원 자사주 보유 증가분도 일부 신규 선임 임원의 기존 보유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자리 수준에 그쳐, 실제 자사주 매입 움직임은 예년보다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의 올해 1분기 기준 임원 자사주 보유 규모(우리사주 포함)는 6만807주로 전년 동기(4만674주)보다 2만주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은 8만1036주에서 8만1261주로 225주 늘어나는 데 그쳤고, 하나금융도 4만6824주에서 4만8469주로 1645주 증가했다. 반면 우리금융은 7만4121주에서 5만4223주로 1만9898주 감소했다.
표면적으로는 KB금융만 임원 자사주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규 선임 효과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KB금융의 경우 올해 1월 신규 선임된 김성현 CIB마켓부문장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2만주가 새롭게 집계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면 KB금융 임원들의 자사주 보유량은 전년 동기 대비 133주 증가하는 데 그쳐 사실상 변동이 없었다. 이는 경영진의 책임경영 의지를 판단할 때 단순 보유량보다 실제 신규 자사주 매입 여부가 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되는 이유다.
반면 금융지주들은 올해도 대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을 이어가고 있다. KB금융은 상반기 1조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 가운데 6000억원은 이미 집행했다. 신한금융은 이달까지 7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고, 하반기에는 8000억~9000억원 규모의 추가 매입이 예상된다.
하나금융도 상반기 4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데 이어 하반기 추가로 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은 상반기 2000억원을 매입한 데 이어 하반기 최소 1500억원 규모의 추가 매입이 전망된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실제 임원들의 신규 자사주 매입 움직임이 지난해보다 크게 둔화됐다는 점이다. 금융지주 임원들은 금융주 저평가가 심했던 시기에는 책임경영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왔다.
대표적으로 2023년에는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자사주 5000주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1만주를 각각 장내 매입했다. 2024년에도 계엄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금융주 약세가 이어지자 양종희 KB금융 회장이 5000주를,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연말 5000주를 각각 사들이며 주가 방어와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금융권에서는 국내 증시 회복과 밸류업 정책 기대감으로 금융주 저평가 인식이 일부 완화되면서 책임경영 차원의 자사주 매입 필요성이 예년보다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주가 지난해 저점 대비 큰 폭으로 회복되면서 과거처럼 '저평가 해소 의지'를 시장에 보여줄 유인도 다소 약해졌다는 해석이다.
여기에 조직 슬림화와 인적 쇄신 여파로 전체 임원 수가 줄어든 점도 신규 자사주 매입 감소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KB금융의 경우 올해 상반기 자사주를 새로 매입한 임원은 6명으로, 매입 규모는 총 4395주에 그쳤다. 지난해 상반기 16명이 1만주가량을 장내 매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신규 매입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다른 금융지주 역시 신규 매입 사례가 제한적이어서 과거와 같은 '릴레이 자사주 매입'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금융권에서는 밸류업 정책이 주주환원 확대에 그치지 않고 경영진의 책임경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자사주 매입 등 이해관계 일치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자사주 소각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회사 차원의 의지라면, 경영진의 자사주 매입은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자신감을 시장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호이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양종희 KB금융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 인사와 맞물려 일부 금융지주 경영진이 책임경영 차원의 자사주 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현재로서는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릴레이 자사주 매입' 분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