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돈만 대거 풀어줬지 정작 나갈 문이 없습니다.”
최근 만난 벤처캐피탈(VC) 업계 한 대표의 하소연이다. 시장에 들어온 자금은 몇 배로 늘었는데 회수 통로는 10년 전과 다를 바 없으니 자금 순환이 막힐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등을 앞세워 정책 자금을 쏟아부으며 벤처시장 덩치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연간 4조원 안팎이던 벤처투자 규모는 이제 12조원대로 커졌고 정부는 내년까지 이를 16조원대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VC들도 이에 발맞춰 대형 펀드를 결성하며 투자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기업공개(IPO) 기업 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간 100개 안팎이다. 투자 규모는 커졌지만 회수는 제자리인 셈이다. 한 VC 대표는 “나가려는 기업은 몇 배로 늘었는데 나가는 문은 그대로”라며 “올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서도 속은 타들어 가는 이유”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당국이 내세운 코스닥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상도 현장에서는 온전히 체감되지 않는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초 코스닥 개장 30주년을 맞아 부실기업을 빠르게 솎아내겠다며 올해 상장폐지 기업이 지난해의 두 배가 넘는 88곳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퇴출에는 속도가 붙은 반면 신규 상장은 여전히 까다롭다. 기술특례 상장 심사는 한층 엄격해졌고 중복상장 논란까지 겹치면서 시장에서는 '다사'만 있고 '다산'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스닥은 본래 당장의 이익이 없더라도 미래 성장성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시장이다. 미국의 테슬라나 아마존 역시 수년간의 적자를 견뎌낼 수 있는 시장이 기다려줬기에 글로벌 혁신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물론 상장 문턱을 무조건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부실기업까지 무리하게 상장시키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투자 확대 정책과 회수 시장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회수가 막히면 VC는 자연스럽게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스타트업으로 흘러가는 모험자본도 위축된다.
국민성장펀드로 투자의 물꼬는 텄다. 이제는 그 자금이 다시 시장에서 순환할 수 있는 길도 함께 열어야 한다. 거래소가 진정 다산다사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퇴출의 칼날만 매섭게 세울 게 아니라 혁신기업들이 적기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도 함께 넓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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