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인클로저 제작에 사용되는 철강재가 대부분 중국, 베트남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를 외부충격이나 열·습기로부터 보호하는 케이스에 한국산업표준(KS) 인증도 받지 못한 외산 철강재가 사용되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현 상황이 고착화되면 안정성 이외에도 ESS 생태계 고사·미국 통상 마찰 등 각종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앙계약시장(1~2차)에 따라 구축되는 ESS의 수량은 약 1350대로 추산된다. 지난해와 올해 1~2차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 결과에 따른 설비용량이 1128MW(저장용량 6768MWh)인데 LG엔솔·삼성SDI의 주력모델을 기준으로 5MWh 당 1대의 ESS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SS 인클로저도 1350여 대의 소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인클로저는 ESS를 충격과 천재지변, 화재 등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특수 컨테이너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화재 위험에 항시 노출될 수밖에 없는 배터리의 특성상 ESS에는 공조·소방·전력 제어 시스템이 갖춰진 인클로저가 필수적이다. 배터리 랙 외에도 전력변환장치(PCS), 배전반 등이 인클로저 내부에 조립·배선된다. 국내에선 서진시스템과 에이스엔지니어링 등이 대표 인클로저 제작업체로 배터리 3사에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국내 배터리 3사에 납품된 인클로저에는 대부분 중국과 베트남산 철강재가 투입되는 실정이다. 실제 열연·냉연·형강을 생산하는 철강사들의 인클로저 제작업체 공급량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배터리 3사의 ESS 패키지 단가를 낮추기 위한 결정으로 보인다. 실제 전력거래소가 올해 2차 ESS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에서 비가격 지표 배점을 50%(기존 40%)까지 확대했지만 시장에선 결국 가격이 당락을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해당 철강재들이 KS 인증 조차 취득하지 못한 제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클로저의 기둥 역할을 하는 H형강은 모양을 유지하면서 버틸 수 있는 최대한계인 ‘항복강도’를 기준으로 품질이 갈린다. 충격 시험은 물론 탄소·황·인 등의 성분 함량에 대한 규격도 정해져있다. 국내 건축법에 따라 건축물의 구조대에는 반드시 KS 인증 제품을 사용해야하나 ESS 인클로저는 예외다. 결국 ESS 평균 수명 주기가 15년, 배터리를 교체할 경우 그보다 늘어날 수 있어 안전상 결함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당장의 수익성을 위해 ESS 인클로저에 외산 철강재를 사용되는 관례가 굳어지면 더 큰 문제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 국내 제조·생산업체의 기회상실을 넘어 관련 생태계 고사, 미국과의 통상 갈등도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마침 글로벌 AI 데이터센터(AIDC) 시장은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이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로 기업들의 투자가 확대되는 추세다. SK그룹은 이달 3일 영남권을 중심으로 140조원 규모 초대형 AIDC 인프라 구축 계획을 발표했고 이외 삼성·현대차·한화그룹의 투자액도 수 백조원에 달한다. ESS는 AIDC 전력난의 유일안 대안으로 꼽힌다. ESS 시장에도 수 조원대 수요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ESS 관련 국내 제조·생산업체들의 낙수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생태계 하단에 위치한 철강업계까지 수혜가 예상된다. 통상적으로 인클로저 1대당 사용되는 열연·냉연·형강 등 철강재는 10톤(t) 정도로 알려져 있다. AIDC에 필요한 ESS 설비용량은 최소 2~4배 사이다. 적게는 수 십만t에서 수 백만t의 철강재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최근 유럽연합(EU)의 철강 쿼터 시행으로 51만t 규모 수요 창출에 나서는 정부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길만한 지점이다.
반대로 외산 철강재를 사용한 인클로저가 향후 통상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중국산 배터리의 미국시장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인클로저와 같은 핵심 구조물에 중국산 철강 소재를 사용할 경우 미국의 까다로운 원산지 규정이라는 통상 장벽에 다시 부딪힐 수 있다”며 “미국 관세당국이 배터리 완제품뿐만 아니라 이를 감싸는 구조물의 원산지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소재 국산화 없이 중국산 재료를 그대로 쓰는 것은 북미 시장 공략에 있어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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