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이 금융당국의 망분리 규제 완화 1차 실증 대상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은행권 인공지능 전환(AX)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 카카오뱅크가 먼저 AI 기반 보안 체계 검증 기회를 확보한 가운데, 금융권에서는 이번 결과가 단순한 실증 참여 여부를 넘어 향후 AI 운영 경험 확보 경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의 망분리 규제 완화 1차 실증 대상에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이 포함됐다. 인터넷전문은행 가운데서는 카카오뱅크가 이름을 올렸다. 반면 주요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은 이번 1차 실증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망분리 규제는 금융회사 내부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분리하는 제도다. 2013년 금융권 전산장애와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보안 강화를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활용이 금융권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망분리 체계가 디지털 혁신과 AI 활용을 제약하는 대표 규제로 지목돼 왔다.
이번 규제 완화는 직원들의 생성형 AI 사용을 전면 허용하는 조치와는 거리가 있다. 금융당국은 우선 보안 목적 AI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에 한해 제한적으로 예외를 허용하고 실제 업무 환경에서 안전성과 효용성을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근 미국 앤트로픽의 '미토스' 등 생성형 AI를 활용한 피싱과 악성코드 제작, 취약점 탐색 자동화 등 사이버 위협이 고도화되면서 금융사 역시 AI 기반 위협 탐지와 보안 관제 체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격 수단이 AI를 통해 빠르게 진화하는 상황에서 방어 체계 역시 AI 기반으로 고도화하지 않으면 보안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판단이 이번 규제 완화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이번 1차 규제 완화를 통해 금융사들이 AI 기반 보안 체계를 실제 업무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선정된 금융사들은 앞으로 1년간 보안용 AI와 SaaS에 한해 망분리 규제 예외를 적용받는다. 금융당국은 실증 결과를 토대로 안정성과 효과를 점검한 뒤 향후 적용 범위 확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1차 실증 대상으로 선정 은행들은 내부 보안 관제와 위협 탐지, 이상 징후 분석 등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단순한 보안 역량 강화 차원을 넘어 향후 생성형 AI 활용 확대 과정에서 필요한 내부통제 기준과 운영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으로도 평가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실증이 사실상 'AI 운영 경험 확보 경쟁'의 성격도 띠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AI 활용은 기술 도입 자체보다 보안성과 책임성을 입증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증 과정에서 축적한 내부통제 기준과 위험관리 체계, 감독당국 대응 경험 등이 향후 AI 서비스 확대 과정에서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에 선정된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허용한 환경에서 AI 기반 보안 체계를 실제 운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선점 효과를 확보하게 됐다. 향후 망분리 추가 완화나 생성형 AI 활용 범위 확대 논의가 이뤄질 경우 실증 경험을 보유한 금융사들이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1차 선정에서 제외된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도 기회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오는 8~9월 2차 실증 대상 은행 선정, 4분기 이후 3차 선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에 제외된 금융사들도 보완 절차를 거쳐 재신청할 수 있는 만큼 추가 실증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다만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입장에서는 경쟁사들이 먼저 운영 경험을 축적하는 동안 추격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KB금융그룹은 멀티 에이전트 기반 생성형 AI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고 농협금융그룹도 그룹 차원의 AI 거버넌스 수립에 나선 상태지만, 실제 보안 환경에서 AI를 적용·검증하는 경험 측면에서는 경쟁사보다 한발 늦게 출발하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결과가 곧바로 AI 역량의 우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권 AI 경쟁의 핵심이 기술 도입에서 운영과 통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 실증 기회를 놓친 것은 적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망분리 완화가 단순한 규제 완화 조치를 넘어 금융권 AX 전환을 위한 사전 검증 단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AI 상담, 내부 문서 분석, 리스크 관리, 개발 생산성 향상 등 보다 폭넓은 AI 활용이 가능해질 경우 이번 실증을 통해 운영 경험을 확보한 금융사들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망분리 완화는 AI 활용 편의성보다 보안 체계를 어떻게 고도화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실증 과정에서 축적한 운영 경험과 내부통제 노하우가 향후 금융권 AX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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