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지난 1일 찾은 경기 화성시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곡면 스크린 중앙에 콕핏(운전석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네시스 G80 실내 인테리어와 동일하게 구현된 시뮬레이터는 스티어링 휠과 시트, 페달, 내부 트림 역시 양산 부품 그대로 적용했다. 최근 완성차 산업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수많은 전자장비와 기능을 실제 차량 제작 전에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로 자리 잡고 있다.
가상 환경에서 버추얼 검증 업무를 담당하는 정필영 남양연구소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가상 환경에서 특정 차종의 모션과 성능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기반 장치”라며 “엑셀 페달까지 양산품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진짜 차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주행을 시작하면 더욱 생동감 있는 주행 경험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콕핏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카본 소재로 제작됐다. 전방에는 9대의 4K 프로젝터가 각각 30도씩 영역을 분담해 총 270도의 시야를 채웠다. 외부 관제실에선 연구원의 운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주행 속도와 코스 등을 긴밀하게 제어했다.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콕핏이 스크린 중앙으로 부드럽게 이동했다. 속도를 높일수록 바람 소리가 커지고 화면 전환도 빨라지면서 실제와 같은 가속감이 전해졌다. 시뮬레이터는 전후, 좌우, 상하의 직선 운동과 롤(Roll), 피치(Pitch), 요(Yaw)의 회전 운동을 포함하는 6자유도(6DOF) 모션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직접 시뮬레이터에 탑승한 한 기자는 "오히려 실제 자동차 탑승때보다 타이어와 노면의 미세한 피드백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아가 남양연구소는 전 세계 다양한 고객의 주행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각국의 도로를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왔다. 정 책임연구원은 “현대차·기아가 유럽, 미국, 호주 등 글로벌 시장과 내수 시장에서 차량을 판매하는 만큼 각 국가의 주행 환경에 맞춘 차량을 개발하기 위해 전 세계 주요 도로의 노면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적층제조솔루션센터(AMSC)다. 설계 데이터만으로 금형 없이 부품을 생산하는 핵심 거점이다. 재료를 깎아내는 기존 절삭 가공과 달리 재료를 한층씩 쌓아 올리는 방식을 사용해 부품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 비용과 납기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WAAM(Wire Arc Additive Manufacturing) 설비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 방식은 강, 스테인리스, 알루미늄, 티타늄 등 다양한 금속을 활용할 수 있고 중간 조립 구조 없이 대형 구조물이나 일체형 부품을 제작할 수 있다. 아울러 AMSC는 적층제조관제실을 통해 전 설비의 가동 상태와 제조 현황, 소모품 재고를 한눈에 확인하며 운영 효율을 극대화했다. 전승엽 책임매니저는 “설계 형상에 맞춰 적층되는 높이를 실시간으로 보정하기 때문에 원하는 형상을 빠르게 만들 수 있고 이후 약간의 후가공을 통해 복잡한 구조의 대형 금속 부품도 빠르고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차량의 치수 품질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디지털측정센터(DMC)를 찾았다. 외관의 틈새나 단차를 정밀하게 관리하는 곳이다. 차량의 치수 오차로 인한 외관 불량, 소음,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3차원 측정장비 CMM(Coordinate Measuring Machine) 공간에 들어섰다. 차 한대당 1000개 포인트를 측정할 수 있다.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팀장은 “연관성 있는 포인트 간의 편차와 거리, 평행도를 계산해 실질적인 품질을 판단한다”며 “600개의 평가 항목으로 완성된 측정 체계는 그대로 양산 공장으로 이관돼 동일한 기준의 품질을 구현한다”고 설명했다.
무빙 부품 검증 공간에선 광학식 3D 스캐너가 전체 형상을 빠르게 측정한다. 자율주행 운반로봇(AMR)이 측정물을 싣고 움직였다. 로봇 암에 장착된 광학식 3D 스캐너가 형상을 자동으로 촬영했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은 부품 형상의 틀을 직접 만들어 자로 쟀다. 틀 제작이 어려워 내측 깊은 곳은 측정이 불가능했으나 3D 스캐너는 오픈된 공간에서 방대한 형상 데이터를 정확히 추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실 노바 랩(NOVA Lab)을 찾았다. 시험차 제작 전 전기·전자 시스템을 실물 하드웨어로 구현한 '와이어카'가 줄지어 있었다. 회로, 통신, 기능, 진단 등 네가지 항목의 시나리오에 따라 자동 검증이 진행됐다. 모니터에는 공조, 램프, 시트 기능이 순차적으로 표시됐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시험차가 제작되기 전, 차량 전체 시스템을 실물로 연결해 기능과 통신, 진단을 검증하는 최초의 단계”라며 “완성된 차에서는 트림 내부에 위치한 제어기를 탈거하거나 회로를 분석하기 어렵지만, 와이어카에서는 기본 기능을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다”고 짚었다.
SDV 검증셀에는 그동안 기능별로 분산된 수많은 제어기가 고성능 컴퓨터 기반의 존(Zone) 제어 방식으로 통합되고 있었다. 전원은 기존 12V에서 48V로, 통신은 CAN에서 고속 이더넷으로 변경됐다. 김 파트장은 “노바 랩은 그룹사와 협력사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라며 “실차 제작에 앞서 통신 상태나 제어기 간 충돌 등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해 SDV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둘러본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와 AMSC, DMC, 노바 랩은 각각 주행 성능 개발과 부품 제작, 품질 측정, 전기·전자 시스템 검증 등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차량 제작 이전 단계에서 가상 환경과 디지털 데이터, 실물 검증을 통해 문제를 미리 찾아내고 개발 기간과 완성도를 함께 높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현대차·기아는 SDV 전환에 필요한 검증 역량을 강화하고 차량 개발 방식을 고도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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