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미국)=딜사이트 방태식 기자] 미국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릴리 게이트웨이 랩스(LGL)’는 단순한 공유 연구실이 아니었다. 초기 바이오텍이 연구공간을 빌려 쓰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릴리(릴리)의 연구개발(R&D) 네트워크와 투자, 멘토링, 사업개발(BD)까지 연결되는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이다. 릴리는 이러한 모델을 내년 한국에도 그대로 이식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바이오캠퍼스 내 LGL을 구축해 국내 초기 바이오텍 생태계를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릴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바이오클러스터에 위치한 LGL을 국내 기자단에 처음 공개했다. 이번 투어에서는 LGL 운영 방식과 함께 내년 문을 열 예정인 한국 거점의 청사진도 함께 제시됐다.
LGL은 릴리의 외부 혁신 플랫폼 '릴리 카탈라이즈360(Lilly Catalyze360)'의 핵심 축이다. 카탈라이즈360은 ▲릴리 벤처스(투자) ▲LGL(연구공간) ▲릴리 익스플로R&D(R&D 컨설팅) ▲릴리 튠랩(AI 기반 연구 플랫폼) 등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임상 단계 기업을 발굴하는 기존 사업개발 조직과 달리 비임상 단계 바이오텍을 조기에 확보해 성장 단계부터 함께 육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베레나 스토커 LGL 부사장은 "그동안 릴리는 임상 단계 기업과는 많이 협력했지만 초기 단계 바이오텍과 연결될 기회는 많지 않았다"며 "LGL은 혁신 기업이 개발 초기부터 릴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릴리는 입주 기업에 연구공간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150년간 축적한 신약개발 노하우와 분야별 연구진을 연결하고 연구 전략 수립부터 투자 유치(IR) 코칭, 글로벌 투자자 네트워크까지 지원한다. 기업마다 맞춤형 프로그램을 설계해 파트너 형태로 협업한다는 설명이다.
스토커 부사장은 "LGL의 가장 큰 가치는 공간 자체가 아니라 릴리가 보유한 과학적 전문성과 R&D 경험"이라며 "기업마다 필요한 분야가 다른 만큼 과학 자문과 연구 전략, 투자자 연결 등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투어 현장에서 확인한 샌디에이고 LGL은 초기 바이오텍 성장에 맞춰 공간을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총 18개의 모듈형 연구실과 사무공간을 갖췄으며 회사 규모가 커질 경우 벽체를 철거해 인접 공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 입주 기업들은 고가 연구장비와 공용 실험실, 회의실 등을 함께 이용하며 필요한 경우 릴리 연구진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입주 기업 선정에도 원칙이 있다. 릴리는 동일한 적응증과 모달리티에서 직접 경쟁하는 기업은 한 거점에 함께 입주시키지 않는다. 기업 간 경쟁보다 협업을 우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신 신경계, 면역질환, 항암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을 균형 있게 유치하고 있다.
실제 성과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 400개 이상의 기업과 연구진이 LGL 커뮤니티를 거쳤으며 릴리 연구진과 200회 이상 협업했다. 입주 기업들이 유치한 누적 투자금은 30억달러(4조6000억원)를 넘어섰고 150개 이상의 신규 치료제 및 플랫폼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릴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에 이어 지난해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까지 거점을 확대했다. 한국은 중국을 제외하면 미국 외 지역 가운데 사실상 첫 전략 거점이다.
릴리가 한국을 선택한 배경도 명확했다. 국내 과학 연구 경쟁력과 증가하는 바이오텍 수, 특히 비임상 단계 기업 비중이 높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여기에 바이오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스토커 부사장은 "한국은 우수한 과학 논문이 꾸준히 나오고 있고 비임상 단계 바이오텍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정부 역시 바이오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LGL을 구축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 거점은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2바이오캠퍼스 내 약 1만2000㎡(3630평) 규모로 조성되며 최대 30개 바이오텍이 입주할 예정이다. 릴리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입주 기업 선정부터 교육 프로그램 운영까지 공동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LGL을 단순한 입주 공간이 아닌 바이오 생태계 구축 전략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LGL과 라이프사이언스 펀드, 산업육성기금 등 세 축을 중심으로 국내 초기 바이오텍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상명 삼성바이오로직스 위탁개발담당(상무)은 "LGL은 릴리의 R&D 멘토링과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연결돼 입주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얻는 플랫폼"이라며 "내년 한국 거점 개소를 기점으로 국내 바이오텍이 글로벌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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