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한화오션이 최근 환헤지(Currency Hedge) 비율을 크게 상향하며 투자 방향 재설정을 암시하고 있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한 미국 조선업 대규모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더 이상 환오픈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회사는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잉여현금흐름(FCF)이 지속적으로 쌓이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셈인데 일각에서는 해당 자본이 한화그룹이 추진 중인 한국항공우주(KAI) 인수에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최근 환헤지 비율을 70~75% 수준까지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환헤지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율을 일정 수준으로 고정하는 재무적 조치로 통상 조선업계는 은행과 특정 환율에 외화를 판매하는 선물환 계약을 맺는다. 한화오션은 신규 수주물량에 대해 상향된 환헤지 비율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화오션은 지난해부터 환헤지를 일부 시행했으나 올해 1분기 기준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그보다 이전엔 환헤지 비율이 0%에 수렴하는 등 사실상 환오픈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미국 조선업 대규모 투자가 예정된 만큼 시장에서 별도의 달러매수를 하지 않도록 관리해왔다고 밝혔다. 최근 환헤지 비율을 상향한 것도 미국 투자의 기본 계획과 달러화 투자 규모가 확정된 이후 충분한 재원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이재명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화 노력에 부응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해 12월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수출기업과 간담회를 개최하고 환헤지 확대를 요청한 바 있다. 한화오션도 환율위기 속 헤지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외환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화오션이 환헤지 비율을 확대한 건 달러가 피크아웃(정점 통과)할 것이라는 내부적 판단이 더욱 주효했다고 보여진다. 그도 그럴것이 이 회사는 올해 2월 컨퍼런스콜에서도 ‘정부 정책 변화에 따른 환헤지 전략의 유의미한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마침 조선업 호황으로 매출 규모가 커지면서 한화오션의 외화민감도는 크게 상승했다. 회사는 지난해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3312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전년(2912억원) 대비 13.7%, 2023년(1360억원) 대비 143.5% 증가한 수치다.
실제 한화오션의 외화차익은 2024년 1457억원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지난해에는 달러 안정화 기조에 오히려 마이너스(-) 1263억원으로 음수전환됐다. 올해 1분기에는 중동사태 영향으로 811억원의 외환차익을 실현했지만 이달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최종 협상을 진행하는 등 원·달러 환율이 다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중동사태 종식 앞두고 재무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환헤지 비율 상향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한화오션은 호실적이 이어지기만 하면 잉여현금흐름을 축적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회사 측은 북미투자 재원을 확보한 상황에서 현재 추가적인 대규모 원화(국내) 투자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앞으로 장부상에 쌓일 현금은 배당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화오션도 올해 마스가 등 대미투자 확대 등의 이유로 배당을 집행하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재무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화오션이 그룹 차원의 KAI 지분 매입에 힘을 보탤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한화그룹은 KAI 지분을 9.04%(한화에어로스페이스 6.5% 등)로 늘리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 나아가 연말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하는 등 보유 지분율을 12%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우주·항공산업 경쟁력 강화와 중복투자를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업계에서는 단순 시너지 창출을 넘어 한화그룹이 KAI 인수 시도에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여기서 문제는 금액이다. KAI의 시가총액은 이달 19일 종가기준 14조2801억원으로 집계됐다. 1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26.41%) 지분 가치만 해도 3조7714억원에 달한다. 이는 한화에어로의 올해 1분기 말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3조3484억원)을 상회하는 수치다. 결국 KAI의 인수를 위해서는 각 계열사의 ‘십시일반’이 강제될 전망이다.
한화그룹은 2023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 당시에도 한화에어로·한화시스템·한화임팩트파트너스·한화에너지 자회사 등 계열사들의 자금을 끌어모은 전례가 있다. 이후에는 흩어져 있던 한화오션 지분을 한화에어로에 모아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식이다. 특히 한화시스템의 경우에도 올해 4월 1조7000억원 규모의 한화오션 지분 블록딜 이후 KAI 주식(약 92만주) 매입에 1250억원을 투입했다.
이와 관련 한화오션 관계자는 “외환시장의 높은 변동성에 대응해 내부 자금 계획과 리스크 관리 원칙 하에 환헤지 정책을 유연하고 신중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기본 계획이 수립되고 달러화 투자 규모와 시기가 구체화된 지난해 말부터 환헤지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달부터는 신규 수주분에 대한 환헤지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급변하는 글로벌 금융 환경 속에서 재무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아 외환 리스크 관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현재 추가적인 대규모 원화 투자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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