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한국 방산기업들이 무인수상정(USV) 등 첨단 플랫폼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를 통제하는 인공지능(AI) 지휘통제(C2) 핵심 기술을 미국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에 의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정부의 국산화 기조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입장이지만, 개별 무기체계 레이어에서 외산 의존이 선례로 굳어질 경우 향후 데이터 주권과 기술 종속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LIG D&A(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달 27일 부산 한국해양대학교 인근 해역에서 'AI 기반 무인수상정 지능형 지휘통제 실증 시연회'를 열었다. 무인수상정 해검3·해검5 등 4척을 투입해 대함전·대잠전 시나리오를 구현한 이번 시연에서 LIG D&A는 C2 시스템을 통해 탐지부터 교전 결심까지 소요 시간을 기존 대비 10분의 1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이때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AI 솔루션은 팔란티어와 협업해 구현됐다. 회사 측은 "해외 고객 요구 사항을 반영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HD현대중공업도 지난 4월 팔란티어와 AI 기반 임무 자율화가 가능한 무인수상정을 개발하기로 했다. 안두릴과는 AI 함정 자율화 기술을 함께 개발 중이다. LIG D&A가 AI 의사결정 두뇌에 해당하는 C2 레이어를 외산과 함께 구현했다면, HD현대중공업은 C2가 통제할 개별 무기체계 플랫폼 단계에서 외산과 손을 잡은 사례다. 두 사례 모두 해군이 추진하는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Navy Sea GHOST'와 연결되는 무인수상정 분야에서 나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 기조와 정면으로 엇갈리는 지점을 안고 있다. 정부는 외산 종속을 피하겠다며 팔란티어를 대체할 국산 AI를 키우는데, 정작 방산기업들은 그 팔란티어와 손을 잡고 있어서다. 다만 기업들은 외산에 맡기는 건 개별 무기체계를 통제하는 AI 레이어일 뿐, 정부가 국산화하려는 군의 통합 의사결정 두뇌(C2)와는 층위가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정부는 AI 의사결정 두뇌의 국산화를 공식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국방부는 미국이 이란 공습에 활용한 팔란티어 고담(Gotham)을 벤치마크한 '한국형 고담' 도입을 내년 예산 및 국방중기계획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장 의사결정과 정보 분석 등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SKT와 국방 AI 전환(AX) MOU를 체결하고, AI 신속 상용화 4개 분야 20개 과제에 내년 말까지 400억 원을 투입하는 계획도 병행하고 있다. 외산 종속을 피하기 위한 국산 AI 두뇌를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업계는 이를 두고 정부 국산화 기조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부가 국산화하려는 건 군의 의사결정 C2 체계이고, 기업이 외산과 협력하는 건 개별 무기체계 레이어"라며 "서로 보완하며 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금 당장의 상충 여부가 아니라 구조가 굳어지는 속도다. 개별 무기체계 레이어에서 팔란티어 등 외산 AI 플랫폼 의존이 쌓이면, 향후 국산 C2와 연동하는 과정에서 작전·표적 데이터가 외국 기업 플랫폼에 이미 축적돼 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데이터가 어디에 쌓이느냐는 곧 정보 주권의 문제다. 여기에 미국산 AI가 핵심 구성요소로 탑재된 무기를 제3국에 수출할 경우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른 재수출 허가가 필요할 수 있어, 수출 통제권마저 미국에 종속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지금은 보완 관계처럼 보여도, 외산 의존이 선례로 자리 잡으면 국산 C2 도입 이후에도 실질적인 통제권은 흔들릴 수 있다.
K-방산 수출은 이미 단일 무기 판매에서 C2를 포함한 통합 패키지 수출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방산전시회(DSA)에서 한국 방산기업들은 지휘통제(C2)·전술기동·군수정비를 묶은 패키지 능력을 전면에 내세웠고, 폴란드 수출에서도 K2 전차·K9 자주포·FA-50이 하나의 패키지로 묶였다. 이 흐름에서 C2 레이어에 팔란티어 AI가 탑재된 채 패키지로 수출될 경우, 미국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른 재수출 허가가 필요할 수 있다. 수출 대상국을 미국이 제한하면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해외에서는 실제 평가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스위스 군이 의뢰한 팔란티어 위험 평가 보고서는 도입 시 위험이 이점을 능가한다고 결론 낸 것으로 전해진다. 스위스 매체 레푸블리크 등이 정보공개청구를 토대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서버를 자국 영토에 두더라도 미국 클라우드법(CLOUD Act)에 따라 민감한 군사 데이터가 미국 정부에 접근될 수 있고, 이는 계약 조항으로 막을 수 없는 소프트웨어 구조 자체의 문제로 지적됐다. 운용에 팔란티어 전문 인력이 상시 필요한 점도 위기 시 외국 기업에 발이 묶일 수 있는 위험으로 거론됐다.
물론 국산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LIG D&A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코난테크놀로지와 함께 다수의 AI 모델이 협업하는 지능형 지휘통제 체계를 개발하고 있고, 한화시스템은 서울대·네이버 등과 한국형 대공방어 전장 상황인식 AI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같은 기업이 외산 협력과 독자 기술 확보를 동시에 추진하는 셈이다.
이런 전례는 한국에 시차를 두고 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엄효식 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해외 기업과 협력이라는 손쉬운 길만 택해선 곤란하다"며 "독자 기술 확보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천궁·현궁 등 유도무기 하드웨어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국산화를 이뤄냈지만, 이 무기들을 하나로 묶어 전장 상황을 판단하고 교전 결심을 내리는 AI 레이어에서는 외산 의존의 토대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층위가 다르다는 논리로 구분되지만, 두 레이어가 결국 하나의 전투체계로 통합되는 순간 그 경계는 흐려진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미국 기술을 들였는데, 정작 그 무기를 어디에 팔지는 미국이 정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를 진정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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