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대만은 시장 크기는 작지만 소비자 반응이 빠르고 고급 가전을 선호하는 시장입니다. 이에 미리 선제적으로 제품을 도입하고 제품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 해외 법인으로 제품 판매를 확대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건일 LG전자 대만법인장은 지난 5월 31일 대만 타이베이시 신이구 원동백화점 가전 매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올해로 대만 법인이 25년째를 맞았는데 최근 K-컬처를 중심으로 LG전자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며 가전 시장에서의 입지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인구 2300만명 규모의 크지 않은 시장이지만 소비자들의 제품 반응이 빠르고 프리미엄 가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LG전자는 이러한 특성을 활용해 신제품을 선제적으로 선보이며 시장 반응을 확인하는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세탁기와 TV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백화점 가전 매장에서 열린 만큼 LG전자의 가전 라인업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가전 매장 가운데 LG전자의 공간이 가장 넓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히타치 등 다른 가전업체들이 주력 라인업 위주로 제품을 전시한 반면 LG전자는 세탁기, TV, 스타일러, 공기청정기, 스탠바이미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국내 매장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현재 LG전자 대만법인의 대표 효자 품목은 세탁기다. 대만 법인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점유율 1위를 달성한 품목도 세탁기다. 현재 대만 세탁기 시장 점유율은 32%에 달한다. 이 가운데 워시타워의 공헌도는 40% 수준이라는 게 김 법인장의 설명이다. 워시타워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하나의 조작 패널로 제어할 수 있는 일체형 세탁건조기다.
김 법인장은 처음 1세대 워시타워를 출시할 당시 430만원에 달하는 가격 때문에 부담이 컸다고 밝혔다. 당시 대만 시장 세탁기의 평균 가격은 120만원 수준으로, 고가 제품으로서는 큰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목표는 연간 1만대 판매였지만 이를 훌쩍 뛰어넘으며 세탁기 시장 점유율 1위까지 달성하게 됐다.
김 법인장은 워시타워가 대만의 기후와 주거 환경에 적합했던 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대만은 기후가 덥고 매우 습해 세탁과 건조가 번거로운 환경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베란다에서 땀을 흘리며 빨래를 널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주거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한 대로 세탁기와 건조기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콤보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건조 성능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만큼 워시타워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에 LG전자는 대만 시장에 특화된 모델을 기획했다. 제품 폭이 65cm인 25인치 모델로, LG전자 세탁기 역사상 한국보다 해외 시장에 먼저 도입되는 첫 사례다. 해당 제품은 오는 7월 초 대만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김 법인장은 "기존 제품의 폭은 70cm, 작은 제품은 60cm"라며 "대만 고객들이 이불 빨래를 좋아하지만 큰 제품은 베란다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크고 작은 제품은 용량이 적은 만큼 중간 사이즈 제품을 새롭게 기획했다"고 말했다.
TV 역시 지난해 12월 이후 대만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LG전자의 폭넓은 TV 라인업을 통해 지역별 선호 모델을 모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부 지역의 경우 스탠바이미와 스탠바이미 스윙, 시네빔 등 1인 가구에 적합한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대만 전체 가구 수는 950만 가구인데 이 가운데 1인 가구가 400만 가구, 2인 가구가 200만 가구로 집계된다. 반면 남부 지역은 대형 TV 수요가 높아 100인치 제품도 백화점에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 6월부터는 2026년형 OLED TV와 마이크로 RGB 모델도 대만 시장에 도입될 예정이다.
김 법인장은 "TV는 대형 제품부터 개인용 디스플레이까지 고객의 사정에 맞춰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마이크로 RGB TV의 경우 중국 업체에 대응하기 위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타일러 역시 대만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대만은 기후가 습한 만큼 옷이 상하기 쉽다. 이에 옷을 세탁하지 않아도 항상 뽀송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스타일러가 대만 고객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으로 꼽힌다.
대만인들의 생활 방식도 스타일러의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대만인들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는 오토바이다.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만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수는 1400만대에 달한다. 대만 인구가 23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셈이다. 외부 매연과 오염물질에 노출되는 일이 잦은 만큼 이를 제거하려는 수요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법인장은 "한국을 제외하고 스타일러가 가장 많이 팔리는 지역이 대만"이라며 "어떤 고객은 옷장 대신 스타일러 두 대를 설치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오토바이 헬멧을 스타일러에 넣는 경우도 있다"며 "스타일러를 세탁기처럼 대만에서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LG전자는 현재 가장 큰 경쟁사로 일본 기업인 파나소닉을 꼽았다. 대만은 통상적으로 일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시장이다.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일본이 오랜 기간 대만의 우군 역할을 해온 영향이 소비 시장에도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선호도는 가전 시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1992년 중국과 공식 수교를 맺으면서 대만과 정식 외교 관계가 단절됐다. 이러한 정치·문화적 배경의 영향으로 한동안 대만 시장에서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K-컬처가 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LG전자의 입지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TV와 세탁기, 공기청정기, 제습기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냉장고 시장은 파나소닉이, 에어컨 시장은 히타치가 각각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들 기업은 모두 대만에 제조공장을 두고 현지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LG전자를 포함한 한국 가전업체 입장에서는 대만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친일 성향과 현지 생산·공급 체계라는 두 가지 과제를 넘어야 했던 셈이다. LG전자는 차별화된 기술력과 혁신 제품을 앞세워 이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30년 전 기술력에 머물러 있던 일본 업체들과 달리 매년 신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전 세계에서 한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경우 대만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은 반중 정서가 강한 만큼 중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TV의 경우 전체 시장의 8%, 세탁기는 4~5%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만 청소기 시장은 예외다. 로봇청소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청소기 시장의 절반가량이 로봇청소기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80%는 중국 브랜드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법인장은 "일본 가전 업체들은 글로벌 선두를 달리는 만큼 완숙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며 "그러나 제품 스펙을 봤을 때 혁신이라기보다는 조금씩 개선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신모델을 출시하고 있는 만큼 대만에 없던 기술과 제품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며 "일본 업체들의 오래된 제품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했을 때 LG전자 대만법인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두 자릿수로 알려졌다. 매년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을 꾸준히 두드린 결과가 성과로 이어진 셈이다. 김 법인장은 "유통망에서는 LG전자가 매년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와 새로운 시도를 하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새로운 시도에서 오는 성장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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