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4일 0시 3분경 온라인으로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홈플러스는 무려 11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개시 결정을 받았다. 19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으로 출범한 후 꾸준한 재무 악화와 인수합병(M&A) 등 굴곡을 겪어왔던 홈플러스는 끝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섰다.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단기 차입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자 선제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는 입장이다. 티몬·위메프 사태처럼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기 전에 법원에 'SOS'를 보낸 셈이다. 기업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일시적으로 채무 의무가 유예되는 만큼 우선적으로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 이후에도 정상 영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후폭풍은 벌써부터 크다. 신라면세점, CGV, 빕스 등의 제휴처는 상품권 사용이 제한됐으며 롯데칠성, 팔도 등의 협력업체들은 홈플러스에 납품을 중지했다. 홈플러스가 유동성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만큼 대금 지급에 대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 후 운영해온 MBK파트너스를 향한 비판 여론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비용 절감과 투자 축소로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부터 온라인 유통이 급성장한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다양한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홈플러스 인수 당시 막대한 인수금융을 일으킨 점을 두고 사실은 시작부터 문제였다는 얘기도 있다.
홈플러스의 대규모 리파이낸싱을 받아준 메리츠금융그룹과 주요 투자자였던 국민연금도 뒤통수를 맞았다. 통상 기업이 회생절차를 신청할 경우 채권자, 주요 주주들과 사전 논의를 진행하지만 이들은 어떠한 정보도 전달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MBK가 자구적 노력 없이 경영 악화의 책임을 채권자와 주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도 피하지 못할 듯하다.
문제는 MBK를 향한 전방위적 비판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그간 'MBK가 고려아연을 인수하고 경영할 능력이 있는가'라고 반문해 온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의 명분에 힘이 실릴 계기가 됐다. 영화엔니지니어링, 네파 등 MBK의 실패로 마무리된 포트폴리오들이 다시금 조명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 MBK 측이 신청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일부 인용한 건 호재다. 다만 법원이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은 유효하다고 판단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가게 됐다. 여전히 고려아연 주주와 여론의 지지가 필요한 MBK의 입장에서 홈플러스 사태로 인한 '부실 경영', '무책임' 비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MBK에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단순한 투자를 넘은 의미가 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해외 LP 사이에서 아시아펀드에 대한 출자 기조는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MBK에게 고려아연 투자는 새로운 테마를 발굴해 해외 LP에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종의 시험대인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며 진화선을 구축해야 한다. 홈플러스 사태가 계속 번진다면 향후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물론 미래 성장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MBK,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