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활주로를 질주하던 전투기가 이내 창공을 갈랐다. 한국형 전투기인 'KF-21(보라매)'가 민간인들 앞에선 두 번째로 비상하는 순간이다.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에 아연했던 것도 잠시,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이곳저곳 탄성이 쏟아진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기체를 좇느라 고개들이 분주하지만 잠시라도 한눈 팔면 놓치기 일쑤다. 별처럼 아득하다가도 어느새 머리 위를 활공하고 있다. "어디, 어디" 하는 얼굴마다 혼이 쏙 빠진 표정이다.
지난 25일 '2024 사천 에어쇼' 현장에선 KF-21의 시범 비행이 펼쳐졌다. KF-21은 최초의 국산 초음속 전투기로, 지난 6월 1조9610억원 규모의 첫 양산 계약이 체결됐다. 한국형 전투기 독자 개발을 천명한 2015년 이후 9년 만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을 맡아 오는 2026년 체계 개발을 완료하고 같은 해 말부터 20대를 순차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KF-21이 민간을 대상으로 비행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며, 사천 에어쇼에서는 처음이다. 총 6기의 시제기가 운용되고 있는 가운데 이날은 우리 군의 주력 전투기 'F-15K(슬램 이글)' 레전드 파일럿으로 회자되는 이상혁 조종사가 1호기를 몰고 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KF-21 테스트 파일럿인 그는 현란한 곡예 비행으로 KF-21의 우수한 기동성을 증명했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수직 상승하던 기체가 배를 뒤집고 거꾸로 하강하자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정도의 비행이 가능한 것은 기동 성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단 이야기다. KF-21의 최대 속도는 1.8마하(시속 2203.2km)로 서울에서 평양까지(직선 거리 195km) 5분여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수준이고, 항속 거리는 2900km에 이른다. 이와 함께 전천후로 공대지·공대공 정밀 타격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전투기로 계획된 만큼, 전력화 시 우리 공군 전력을 한층 향상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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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양산이 확정되자 KAI는 후속 지원 분야에서도 열 띈 마케팅을 전개하는 모습이다. 회사는 가상 현실(VR)과 증강 현실(AR), 혼합 현실(MR) 등 최첨단 기술이 활용된 스마트 창정비 및 교육 프로그램 확보에 힘 쏟고 있다. 이번 에어쇼에서는 KF-21 전자식 기술 교범(IETM)과 메타버스 기반의 원격 지원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통합 체계 지원(IPS) 역량을 조명했다.
IETM은 기존의 책자형 교범과 마찬가지로 무기 운용 및 정비 지침을 수록한 체계지만, 영상과 검색 기능을 활용할 수 있어 계통도와 작업 절차 등 복잡하고 어려운 정보를 보다 쉽게 전달 가능하다. 아울러 노트북과 태블릿 등 휴대형 컴퓨터에 탑재할 수 있고 시험 장비, 데이터 저장 장치와 연동이 가능해 정비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책자형 교범 경우 부피가 커 활용성이 떨어지는 데다, 파손 등에 따른 관리 애로 사항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제 VR 고글을 쓰고 KF-21 IETM을 체험해 보니, 항공기 내부 곳곳에 있는 부품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해당 시스템을 통해서라면 이역만리에 있는 KF-21도 온라인상 연결된 가상 공간을 통해 결함 확인이나 예측이 가능하고, 국내 엔지니어들이 원격으로 현지 정비사와 협업해 유지 보수(MRO)를 수행할 수 있다. MRO를 위해 한국까지 기체를 이송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KAI는 최근 소형 무장 헬기(LAH-1) IETM을 발간한 데 이어, KF-21 IETM 개발도 막바지 단계다. 이 회사 관계자는 "KF-21 IETM은 오는 12월 기종 시험 평가부터 활용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KF-21 IETM 경우 항공 군수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로 3차원(3D) 형상을 적용했고, 무기 수출 시 요구되는 국제 규격(S1000D)도 확보한 만큼 수출 경쟁력이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이어 KAI 관계자는 "원격 정비 지원 기술은 확보했고, 원격 유지 보수(MRO)는 준비 단계"라며 "폴란드향 FA-50에 탑재하는 것도 계획 중이며, 다른 FA-50 도입국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고객으로선 MRO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원격 조종을 통한 관리로 가동률도 잘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LIG넥스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부스를 꾸렸다. 이들 업체에도 KF-21은 중요한 먹거리다. LIG넥스원은 KF-21에 자사 유도탄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엔진을 공급한단 목표다.
LIG넥스원 경우 한국형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유도 폭탄(KGGB)과 장거리 공대지 유도 미사일 '천룡'을 KF-21용 유도 무기로 제시했다. 특히 천룡은 길이가 4.9m에 달하도록 구상된 만큼 압도적인 화력이 기대된다. 개발이 완료되기도 전 '보라매의 발톱'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2028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며, 향후 전력화되면 적의 지하 벙커와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용도의 핵심 무장이 될 예정이다. KGGB 경우 12년 전 전력화, 다수 항공기에 장착돼 온 만큼 운용 신뢰성이 높다. KF-21에서는 양 날개에 GPS를 달아 더욱 향상된 정확도와 사거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터보 샤프트 엔진과 독자 개발을 추진 중인 첨단 엔진을 소개했다. 이 회사는 2만4000파운드 이상의 추력을 낼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해 KF-21 블록 3를 포함한 차세대 전투기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이들 기업이 맡는 KF-21의 핵심 무장과 심장 모두 국내 기술로 개발된다는 것이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국산이 아닌 부품의 MRO는 원제조 업체가 방문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때까지 (무기의) 기동이 불가한 등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국산화는 비단 경제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주 국방이 달린 문제"고 강조했다.
이밖에 KAI는 한국형 기동 헬기(KUH-1) '수리온'과 소형 무장 헬기(LAH) 등 회전익 주력 기종들, 유무인 복합 체계를 탑재할 차세대 공중 전투 체계도 소개한다.
한편 올해 사천 에어쇼에서는 KF-21 외에도 KAI가 개발, 생산한 T-50 계열과 KT-1 등 다수 군용 항공기의 기동도 볼 수 있으며 LAH-1은 첫 시범 비행을 선보인다. KAI는 경남도와 공군, 사천시 등과 협력해 사천 에어쇼를 세계적 수준의 우주·항공 방산 전시회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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