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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산실 KAI…자부심 된 세월의 흔적
박민규 기자
2024.11.13 06:00:28
사천사업장 FA-50·LAH 조립 '한창', 차세대 기종 테스트도 활발
이 기사는 2024년 11월 11일 15시 53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F-21' 생산 현장. (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

[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2024 사천 에어쇼'를 화려하게 수놓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전투기들이 연어처럼 회귀하던 곳. 지난달 25일 찾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 사업장이 주인공이다. 사천 사업장의 첫인상은 투박했다. 항공 시설인 만큼 저고도 건물만 있고, 외관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KAI는 이러한 세월의 흔적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30년은 족히 된 이곳에서 한국형 전투기 'KF-21(보라매)'은 물론, 최초의 초음속 국산 경공격기이자 K-방산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FA-50'을 탄생시킨 장소기 때문이다. 실제 생산과 수리 현장에는 얼추 세어도 수십여대의 회전익·고정익 항공기들이 조립되고 있었다. 낡은 건물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K-방산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있는 것이 KAI의 자부심의 원천 아닐까.


사천 에어쇼에서 시범 비행을 펼쳤던 KF-21은 KAI 격납고에 잠들어 있었다. 격납고는 항공기를 보관할 뿐만 아니라 점검, 정비도 수행하는 공간이다.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을 내며 종횡무진하던 야수도 이곳에서는 얌전한 모습이었다. 정비·점검 모습을 볼 순 없었으나 기체 곳곳에 거뭇한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코앞에서 본 KF-21의 위용은 상당했다. 길이는 16.9미터로 시내버스보다 조금 큰 정도지만, 높이가 5m에 달해 조종석을 보려면 고개를 꽤나 빼들어야 했다. 더불어 날렵하게 빠진 날개는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질감이 느껴졌다. 이에 대해 KAI 관계자는 "탄소섬유 등이 활용된 특수복합소재로 제작됐다"며 "KF-21 시제기 1~6호 모두 조금씩 다른 회색을 채택했고, 현재 베스트컬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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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납고에선 각종 테스트도 이뤄짐에 따라 KF-21 이외 차세대 기종의 전력화 준비 현장도 볼 수 있었다. 이날은 국산 기동헬기(KUH) '수리온'에 무장을 탑재한 해병대용 상륙 공격 헬기의 연료 시험이 한창이었다. 때로 비밀스러운 시험이 진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요청에 따라 FA-50에 초음속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을 장착할 수 있는지 여부도 시험했다는 것이 KAI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해당 유도 미사일의 탑재가 현실화하면 그동안 경공격기 수준에 머물렀던 FA-50의 공력력이 크게 증강되며 세일즈에도 유리해질 전망이다.


KAI는 폴란드의 FA-50 48대 도입 등으로 2022년부터 수출 축포가 터진 데다, 올해는 KF-21의 첫 양산(20대)도 결정되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립 라인 가동에 불이 붙은 것은 물론이고, 시설 증축에도 여념이 없다. 현재 KF-21용 파이널 어셈블리 2라인과 격납고를 짓고 있으며, 2개 시설 모두 내년 3월 완공할 예정이다.


'FA-50' 생산 현장. (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

이날 방문한 고정익동에서는 14대의 FA-50이 조립되고 있었다. 해당 건물은 축구장(폭 120m, 길이 180m 기준) 3개 반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중간에 기둥이 없다. KAI 관계자는 "기둥이 없어 라인 변경이 굉장히 쉽다"며 "어떤 항공기든 만들어 낸다는 철학을 담은 것"이라고 언급했다.


KAI의 고정익 생산은 동체의 앞·중앙·후면, 날개를 따로 만들어 연결하는 식인데 특이한 점은 우리 군과 인도네시아에 인도해야 할 T-50, 폴란드향 FA-50 등의 공정이 한번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육안으론 똑같은 형상이지만 내부는 상이하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성능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커스터마이징' 제조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숙련공들의 수작업 덕분이다. KAI 관계자는 "일부 여객기의 경우 제조가 자동화됐지만 전투기는 자동화할 수 없다"며 "도면이 전부 3차원(3D)인 데다, 자동화 작업을 수행할 만한 큰 구조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작업, 물리적으로 힘든 일은 대부분 자동화 시스템으로 처리 중이다. KAI는 직접 개발한 동체자동결합체계(FASS)와 무인자동운반차(AGV) 등이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수십 명이 달라붙어 도면과 비교해 가며 서너 시간 하던 조립이 이젠 FASS를 통해 금방 끝날 뿐만 아니라 정밀도도 대폭 높아졌다. FASS는 오차 범위는 1000분의 1인치로, A4 용지 4분의 1 두께에 불과하다. 아울러 동체와 날개를 결합할 때 수천 개의 구멍을 뚫어야 하는 작업도 자동화 됐다. 표면은 탄소섬유복합재, 뼈대는 알루미늄인 부품을 사람이 뚫으려면 여간 무리가 가는 게 아니다. 모니터에 필요한 장비를 말하면 갖다 주는 로봇 등도 운용되고 있다.


이외 현장에서는 KT-1을 수출용으로 개발하기 위한 시제기도 생산되고 있었다. 수출용 KT-1은 조종석의 디지털화 수준을 높인 게 특징이다. KAI는 말레이시아향 FA-50 조립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수리온' 생산 현장. (제공=한국항공우주산업)

회전익동 역시 6500평 규모로, 축구장 3개 반 크기지만 고정익동과 달리 일부 격납고를 품은 형태다. 현장에는 수리온을 비롯해 소형 무장 헬기(LAH), 바닷속 지뢰를 제거하는 소해 헬기 등 수리온 파생형 헬기들도 다수 걸려 있었다. 수리온이 중동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잠재 수요가 높고, 당장 올 연말에도 수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면 LAH는 우리 군의 긴급 소요에 첫 양산부터 불 붙은 상황이다. LAH는 군의 노후 500MD 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으며, '탱크 킬러'를 표방한다. 


KAI 관계자는 "수리온이나 LAH 경우 1대 만드는 데 9개월이 걸린다"며 "월간 생산 능력은 수리온 3대, LAH 2.5대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어 "군의 500MD 헬기가 공격형으로 쓰일 시기는 지난 가운데 그 대체재인 코브라 헬기 운영도 못하는 상황이라 정부에서 LAH의 빠른 납품을 요구 중"이라며 "이에 공급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전시나 비상 시처럼 인력을 더 투입해 3교대까지 늘린다면 생산량을 기존의 3배로 늘릴 수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KAI 관계자는 이날 무엇보다 '국산화' 역량을 강조했다. T-50 시제기 1호기에 능동 위상 배열(AESA) 레이다를 탑재하는 개조 현장에서 한 관계자는 "미국산 F-15 전투기를 개조했다간 난리날 것"이라는 농담 뒤 "우리 기술로 개발한 항공기이기에 성능 개량, 진화형·파생형 모델 개발을 위한 개조도 자유롭다"고 언급했다. 실제 T-50도 국산 비행기인 덕분에 레이더원 탑재를 통해 FA-50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 폴란드 FA-50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AESA 레이더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관건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추세다.


앞선 KAI 관계자는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전복됐던 블랙이글스 항공기도 미국산이었음 폐기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국산인 덕분에 부품 교체 후 원상 복구할 수 있었다"고도 말했다. 이어 "국산화는 경제성 뿐 아니라 자주 국방도 달린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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