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투자 포트폴리오는 증시침체로 주가가 부진하다. 금리가 높다 보니, 돈 빌릴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수대상 밸류가 싸지지도 않았다. LP는 지갑을 닫거나, 출자를 줄여 펀드 만들기도 만만찮다. 이쯤되면 버티기 싸움이다.

전반적으로 배를 곯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사(餓死)할 정돈 아니다. 호황기 난립한 신생 PE야 칼바람 맞겠지만. 중대형급 하우스들은 호·불황 겪은 '짬바'가 얼만데. 쉽사리 안죽는다. 내부 허리띠부터 졸라매고 살 궁리에 나선다. 돈 다루는 업이라 그런지 생존법은 꽤 잘찾는 편.

최근 얼음장 같은 바닥에 온기가 감지됐다. 바로 카브아웃(carve-out) 거래 증가다. 이는 대기업이 비주력 사업부를 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수익성 나쁜 사업을 처분하는 개념이 아니다. 외려 돈은 잘 벌지만 본업과 시너지가 크게 나지 않은 부문을 정리하는 케이스가 많다. 

눈에 띄는 사업부가 여럿 보인다. PE가 관심 가질 만한 양질의 딜이다. 글랜우드PE의 약진이 돋보인다. LG화학 진단사업부를 인수한데 이어 SK케미칼과도 제약사업부 매각을 논의하고 있다. 국내 대표 PE인 한앤컴퍼니 또한 SK엔펄스와 파인세라믹스 사업매각을 협상 중이다.

대기업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카브아웃 딜을 한다. 시장침체로 실탄확보 니즈가 생겼다. 기업의 원동력은 결국 '투자'. 시장 분위기 나쁘다고 엔진을 잠시 껐다 갈 순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유한한 자원을 배분한다면 주력사업에 베팅하는 게 맞다. 남는 돈은 곳간에 쌓으면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카브아웃'이 내년 M&A시장 반등을 이끌 수 있다고 기대한다. SK·LG·신세계 등에 집중된 '사업부 정리기조'가 타그룹으로 퍼지면, 딜이 한층 늘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암울한 올해 성적표를 받아들면 의사결정을 하기가 훨씬 수월해 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찌감치 언급되는 그룹도 있다. 롯데, CJ 등 현금확충 이슈가 있는 곳들이다. 유통사가 들고 있는 식음료 사업부 등이 도마위에 오른다. 이밖에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에 막혀 사업부를 잘라내야 하는 기업들도 있다. 발빠른 PE는 이미 예상매물을 물색하고 태핑에 돌입했다. 

그런데 사실 딜을 따낸다고 끝이 아니다. 정작 더 큰 숙제를 마주해야 한다. 피인수대상 밸류를 끌어올리는 본질적 문제다. 이는 하우스 역량과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볼트온(bolt-on) 전략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동종사업 추가 인수를 통한 가치증대 기법이다.

현 M&A 시장이 얼어붙은 것은 자명하다. 단기간 해소될 것 같지도 않다. 새 먹거리를 찾고 대응하는 것만이 생존율을 높인다. 이런 관점에서 '카브아웃'은 큰 기회다. 베일에 쌓여 있는 중소기업 보다, 선진시스템에 오랜기간 녹아든 알짜를 건져내는 게 리스크가 적을 수 있다.

결국 PEF 운용기간은 8~10년. 향후 2~3년이 명운을 결정한다. 카브아웃 기회를 찾고, 볼트온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퍼즐을 하나씩 잘 모아 두면, 호황기에 빛을 볼 수 있단 얘기다. 작은 틈새로 새어 나오는 온기를 잘 품어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