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호창 부국장]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아스는 수도 고르디온을 건설한 뒤 그의 수레를 신전에 바치며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묶었다. 이후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은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란 예언이 전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듭을 풀어보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훗날 이 예언을 들은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끊어 버렸다.

정치권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문제로 시끄럽다. 2017년부터 본격 추진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통과한 사업의 노선이 원안과 크게 달라진 점이 알려지며 정쟁의 대상이 됐다. 

바뀐 노선의 종점 부근에 대통령 처가 일가의 토지가 있다는 점을 들어 야당은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노선 변경이 확정된 것이 아니며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의혹 제기가 지속되자 국토부 수장인 원희룡 장관이 돌연 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일견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잘라버린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다. 오히려 논란이 커지고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는 중이다.

특혜 시비에 이어 사업비 1.8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장관이 독단적으로 중단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더해진 상황이다. 여당에선 야당 인사의 양평 토지 보유를 문제 삼아 역공에 나서는 등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권 공방은 치열하나 양측 모두 국민과 양평 주민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 내년 봄 총선을 앞두고 서로 상대의 꼬투리를 잡는 데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여야의 싸움은 정치인의 본질이고 일상이라 치더라도, 원 장관의 '극약 처방'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그가 정치가 아닌 행정을 펼치는 자리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다. 행정은 국가 목적이나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행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국가 작용을 말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권력의 주인은 바뀔 수 있으나, 공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은 멈추거나 공백이 있어선 안된다. 행정학에서 공무원의 정치중립을 강조하는 이유다. 정파적 이익이나 정쟁과 무관하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직무를 집행해야 하는 것이 행정부에 몸담은 자의 의무다.

원 장관의 결정으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의 타당성 조사와 분석에 사용된 비용은 물론이고 관련 공무원들이 쏟은 노력과 시간까지 모두 물거품이 됐다. 국민의 혈세 낭비다.

도로 건설을 통한 물류비용 절감,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도 포기해야 한다. 관련 사업 수주를 준비해 온 민간기업들의 손해는 덤이다. 적지 않은 사회적 손실이다.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된 점도 우리 사회에 부담이다. 원 장관은 이런 대형 사업의 중단을 국무회의 의결은 물론이고 상급자인 국무총리나 대통령의 승인 없이 홀로 결정했다. 향후 비슷한 일이 재연될 수 있어 국책사업의 신뢰성이 흔들리게 됐다.

원 장관은 꼬인 매듭을 풀어내는 대신 잘라내는 선택을 했다. 때론 이런 방법이 묘수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매듭을 푸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란 점에서 칼로 끊는 것은 결코 해법이라 할 수 없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은 알렉산더 대왕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예언대로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 된다. 하지만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낸 탓인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갑작스레 요절했고 제국은 곧바로 조각조각 해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