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유범종 차장] 전국시대에 제나라 왕이 경쟁국인 위나라를 치려고 하자 관료이자 학자인 순우곤이 이렇게 말했다. "한자로라는 개가 동곽준이라는 토끼를 쫓아 산을 돌고 돌다 둘 다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이를 본 농부가 주워서 이득을 보았다"며 "서쪽의 진나라와 남쪽의 초나라가 이를 기회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것이 걱정이다"고 간곡히 왕을 말렸다. 이 말을 들은 제나라 왕은 위나라를 치려던 계획을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에만 힘썼다.

'견토지쟁(犬兔之爭)'이란 고사성어가 나오게 된 유래다. 견토지쟁은 작금에 이르러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나 단체가 싸우는 사이 제삼자가 이득을 보거나 쓸데없는 다툼을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다. 국내 유통시장에서 공룡으로 군림하고 있는 CJ제일제당과 쿠팡의 최근 분쟁을 보면 이처럼 꼭 들어맞는 말도 찾기 어렵다.   

CJ제일제당의 즉석밥 브랜드 '햇반' 납품가격을 두고 벌어진 양사의 대립은 현재 7개월째 답보상태다. CJ제일제당은 올해 납품가격 협상과정에서 쿠팡이 무리하게 가격을 후려쳤다고 주장하는 반면 쿠팡은 CJ제일제당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더욱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CJ제일제당은 또 다른 국내 거대 유통인 신세계그룹과 동맹을 구축하며 쿠팡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CJ제일제당은 신세계그룹 계열의 이마트·SSG닷컴·G마켓과 함께 공동으로 신제품을 기획하고 신세계 플랫폼에 우선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쿠팡의 강력한 라이벌인 신세계 입장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으리라.

이에 질세라 쿠팡도 반격에 나섰다. 이달 11일 쿠팡은 국내 식품시장에서 수십년간 독점체제를 구축하던 독과점 식품기업 제품이 쿠팡에서 사라지면서 중소·중견기업 제품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자료에는 특정업체들의 매출성장률까지 상세히 포함시키며 대기업 독과점의 폐해를 맹비난했다. 사실상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CJ제일제당을 겨냥한 행보인 셈이다. 

양사의 싸움은 이제 '반(反)쿠팡 연합'과 '쿠팡 연합'을 만들어내며 단순한 납품가격 조정에서 벗어나 국내 식품업계 선두기업과 이커머스 강자 사이에 유통시장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신경전으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양측의 대립이 장기화될수록 결국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점이다. CJ제일제당 입장에서 보면 국내 대형 온라인플랫폼인 쿠팡을 놓치게 되면 안정적인 최대 매출처를 잃게 될 수 있다. 쿠팡 역시 국내 식품업계 선두인 CJ제일제당 상품 구매 문턱이 높아지며 구색이 빠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기에 CJ제일제당이 쿠팡의 경쟁사들과 협력전선을 구축하면서 향후 시장점유율 확대에도 애를 먹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양사의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다. CJ제일제당과 쿠팡 모두 자사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이에 따른 불편은 오롯이 소비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CJ제일제당 상품이 쿠팡에 온전히 입점하지 못하게 되면서 쿠팡 회원들은 또 다른 온라인쇼핑몰을 찾아나서야 한다. 반대로 쿠팡의 독보적인 배송서비스를 CJ제일제당 상품에는 적용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브랜드 이미지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 

양사 모두 구멍가게들이 아니다. 두 기업의 전략이 국내 유통시장을 들썩이게 만들고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고 더 이상 유통시장에서 분쟁과 혼란이 발생하지 않게 서로 한 발짝씩만 가까이 다가가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