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한국토지신탁이 공모시장에서 700억원 규모 자금조달에 나섰지만, 투자수요를 채우지 못해 미매각이 발생했다. 지난 2월에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했던 한국토지신탁은 올해에만 2번 연속 투자수요 미달에 처하게 됐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관련 기업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신용평가사도 수요예측 직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이 미매각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국토지신탁은 7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을 위해 이날 진행한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매수주문은 330억원에 그쳤다. 희망금리밴드 상단을 개별민평금리 대비 150bp(1bp=0.01%포인트)를 가산해 제시했지만 투자수요를 모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토지신탁은 지난 2월에도 800억원 규모로 회사채 발행에 나섰지만 수요예측에서 560억원의 자금을 받는 데 그쳤다. 당시 희망금리밴드는 개별민평금리 대비 -30 ~ +130bp 수준이었다. 세 달 만에 재차 공모시장에 나서면서 모집액은 줄이고 희망금리밴드 상단은 20bp 높였지만 오히려 매수주문은 더 적게 들어왔다.

IB업계 관계자는 "시공사 부도가 발생하면 책임준공 신탁사가 떠안는 구조로 인해 시장에서 우려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올해 들어 건설채에 대한 투심이 크게 위축된 흐름이 나타났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건설사·신탁사 등 부동산 관련 기업의 회사채가 시장에서 소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건설사 DL도 자금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모색했지만 시장의 비우호적인 분위기를 확인한 뒤 발행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신탁 수주 실적이 줄어들면서 시장 지배력도 눈에 띄게 낮아지는 추세다. 한국토지신탁의 영업수익(매출)은 지난해 1882억원에 그쳐 2016년 이후 처음으로 2000억원을 밑돌았고, 코람코자산신탁(1972억원)에 밀려 신탁업계 1위 자리도 뺏겼다. 영업수익 기준 시장점유율도 2018년 20.9%에서 지난해 10.8%로 큰 폭 하락했다. 올해 1분기 수주실적은 126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기간(790억원) 대비 84% 감소했다.

고정 이하 자산비율이 높아 자산건전성 지표도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토지신탁의 고정 이하 자산비율은 61.5%에 달해 차입형 개발신탁 사업을 영위하는 ▲코람코자산신탁 59% ▲대한토지신탁 45% ▲한국자산신탁 32% 등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었다. 고정이하 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 비중은 지난해 말 24.1%에 그쳐 유사시 대손비용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코람코자산신탁(63%), 대한토지신탁(40%), 한국자산신탁(51%) 등과 비교해도 뚜렷하게 낮은 수준이다.

이익창출력 저하와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으로 인해 한국신용평가는 수요예측 직전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등급(A0)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한국토지신탁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A0와 A-로 스플릿이 발생한 상태였다. 한신평의 아웃룩 조정으로 인해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등급이 A-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번 수요예측에서 나타난 부진한 매수주문도 한국토지신탁의 크레딧 리스크가 상당 부분 반영된 영향으로 보인다.

단독으로 대표 주관을 맡은 KB증권은 최종 청약일인 이달 말까지 추가 청약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KB증권 관계자는 "지난 2월에도 한국토지신탁이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했지만 추가 청약을 통해 매각이 모두 이뤄진 바 있다"며 "금리가 충분히 높은 수준이다 보니 리테일 수요는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