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삼성전기가 불확실한 업황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 유동성을 확보했다. 지난해 차입을 크게 늘렸지만 대부분 현금 곳간을 채우는 데 사용하면서 순차입금은 여전히 마이너스(-) 값을 유지했다. 다만 어려운 영업 환경이 예고된 상황에서 현금전환주기까지 나빠진 만큼 현금을 비축해 외부 환경 변동에 따른 완충력을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기 총차입금은 1조4213억원으로 전년대비 43.22% 늘었다. 외부차입으로 끌어온 현금은 별도 설비투자에 사용되는 대신 고스란히 곳간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조6771억원으로 40.50% 증가했다.

차입은 우리은행을 포함, 금융권 3곳에 할인율(이자율)을 적용한 매출채권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삼성전기가 매출채권 할인을 통해 단기 차입한 금액은 7659억원. 할인율은 미국 소파(SOFR) 금리에 0.45~0.65%를 가산한 값으로 정해졌다. 단기차입금이 늘며 전체 차입금의존도도 12.92%로 전년 말 대비 2.94%포인트 높아졌다.

늘어난 차입금이 대부분 현금으로 흘러 들어간 결과 삼성전기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현금 유출을 막기 위해 자본적 투자(CAPEX)도 최대한 줄일 방침이다. 삼성전기는 앞선 컨퍼런스콜에서 고객사 요청이 선행된 차세대 반도체 기판 사업을 제외하고는 올해 설비투자 집행 규모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는 불확실한 업황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다. 업황 부진은 IT기기 수요가 약세를 보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졌다. 전방업체가 얼어붙자 삼성전기는 재고관리를 위해 가동률 조정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주력 제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제조하는 컴포넌트 사업부 가동률은 절반 수준인 58%까지 낮췄다. 

그런데도 예상보다 부진한 중국 리오프닝 효과에 올해 1분기 실적도 우려스러운 실정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집계한 삼성전기의 1분기 영업이익 시장 기대치(컨센서스)는 전년대비 약 70% 줄어든 1200억원대로 나타났다. 

삼성전기가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 선제 대응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돈이 들어오는 시기(매입채무회전일수)와 나가는 시기(매출채권회전일수)의 불일치가 꼽힌다. 지난해 삼성전기는 평균적으로 24.8일마다 거래처에 외상 대금을 지급했다. 반면 거래처로부터 대금이 들어오는 데는 42.8일이 걸렸다. 돈이 나가고 18일 뒤에야 곳간이 채워지는 셈이다. 

지난해 삼성전기의 현금전환주기는 91일로 전년대비 3.5일 늘어났다. 현금전환주기는 기업이 원재료를 사들여 제품을 만들고 파는 과정에서 현금이 기업 안으로 유입되는 데까지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매출채권회전일수와 재고자산회전일수를 더한 값에 매입채무회전일수를 빼서 구한다. 현금전환주기가 길면 운전자본 부담이 커지면서 차입이 필요해질 수 있다. 

경쟁사인 LG이노텍과 비교해봐도 차이가 크다. 지난해 LG이노텍의 매입채무회전일수와 매출채권회전일수는 각각 37.7일, 34.4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돈이 들어온 뒤 3.3일 후에야 대금을 지급할 시기가 돌아왔다는 의미다. 지난해 LG이노텍의 현금전환주기는 전년대비 16일 늘어나긴 했으나 양호한 수준인 32.5일로 나타났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잉여현금흐름(FCF)과 리스크 관리를 통해 외부 불확실성에도 실적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