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지난해 삼성전기는 재고자산 적체를 막기 위해 주요 사업부 가동률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거시경제(매크로) 불안에 민감한 스마트폰, PC 등 IT용 부품에 주력하는 만큼 수요 둔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현금성 자산도 대거 쌓아둔 만큼 전방업체 수요가 살아날 때까지 일단 버티겠다는 전략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삼성전기의 재고자산 잔액은 1조9016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4.57% 증가했다. 고물가, 고금리로 전방업체 재고가 빠지지 않으면서 주력 제품인 IT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판매가 부진했다. 여기에 중국 봉쇄까지 겹쳐 샤오미 등 주요 고객사에 대한 출하량도 급감했다.

그런데 극심했던 업황 부진과 비교하면 재고 규모는 정상 수준으로 평가된다. 앞서 진행한 가동률 조정 효과가 두드러진 영향이다. 지난해 3분기 말 MLCC 제조를 담당하는 컴포넌트사업부 가동률은 65%로 전년 말 대비 24% 포인트 줄었다. 광학솔루션사업부 가동률도 내내 50% 안팎의 낮은 수준에서 유지됐다. 고객사들의 공급 확대 요청이 뒤따른 패키지사업부만 가동률을 90% 넘게 가져갔다.

강도 높은 노력에 지난해 말 재고자산회전율은 4회를 기록했다. 삼성전기의 재고자산회전율은 지난해 3월 말 4.3회, 6월 말 3.4회, 9월 말 3.9회를 나타냈다. 재고자산회전율은 매출액을 재고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회전율이 낮을수록 재고가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가 늦다는 의미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기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IT용 MLCC가 적자 전환됐음에도 강도 높은 가동률 조정으로 재고일수는 정상 수준에 근접했다"며 "전장용 MLCC의 매출 성장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기는 중국 리오프닝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기의 MLCC와 카메라모듈 매출의 각각 50%, 30%가 중국향 매출이기 때문이다. 오는 2분기부터 IT용 부품 수요가 살아나면 하반기에는 재고를 다 털고 가동률 조정을 끝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삼성전기는 지난달 투자설명회(IR)에서 "2분기 이후 점진적 시황 회복을 기대한다"면서도 "모니터링을 통해 탄력적으로 생산 운영을 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현금성 자산을 늘린 이유도 거시경제 불안과 맞닿아 있다. 기대감은 분명하지만 IT용 부품 시황이 언제 회복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고객사 요청에 따른 서버·네트워크용 고부가 반도체 기판(FC-BGA) 생산설비(CAPA) 증설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삼성전기의 현금성 자산은 1조6771억원으로 41.50% 늘었다. 차입금 의존도를 나타내는 총차입금 비율도 18.47%로 전년 말 대비 4.03% 포인트 상승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줄어들자 차입을 통해 현금 규모를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불황으로 자본적 투자(CAPEX)를 탄력적으로 집행한다고 해도 불가피하게 집행되는 성비 보수 등 필수 투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라며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입이 늘어났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