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소비자물가지수 발표를 앞둔 미국 증권시장이 방향성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어제에 이어 주요 지수는 박스권에서 움직이며 혼조세를 보였어요.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에 일종의 눈치 장세가 펼쳐진 건데요. 시장이 방향을 잡기 위해서는 향후 발표될 경제지표들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헤지펀드들의 매도 공세로 인해 기술주가 하방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헤지펀드를 비롯한 세력은 2011년 11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경제 데이터 발표를 앞두고 차익 실현에 나선 거죠.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매도세는 지난 2주 동안 시장 전반에 걸쳐 연출됐습니다.

즉 월스트리트는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강하고 둔화세가 느리다는 게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는 것을 대비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CPI와 PPI가 나란히 높은 수준으로 나온다면 연준의 긴축 정책에는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어요. 이는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요. US뱅크 자산운용의 윌리엄 노데이 수석투자책임자는 "이번 주에 나올 물가지표는 연준의 5월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지막 데이터가 될 것"이라며 "연준이 인플레이션 방지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리인상 쪽으로 전망이 기울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최근 나온 노동지표도 연준의 등을 밀어주고 있죠. 지난 7일(현지시간) 나온 고용보고서에서는 노동시장이 아직 견조하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일단 비농업 일자리가 20만 개 이상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11월에 언급한 목표치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선임고문은 "물가지표까지 봐야 하지만 고용보고서만 봤을 때 5월에 금리가 오를 것"이라며 "이 데이터들은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내다봤어요.

그러나 금리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합니다. 연준의 기대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인플레이션이 둔화되고 있고 노동시장도 조금씩 식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연준이 언제까지고 긴축 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긴축 사이클의 거의 끝부분에 와 있다"고 말했어요.

물론 금리인상이 끝난다 해도 시장이 기대한 것처럼 연내 금리가 인하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금리인하 시나리오의 기본 전제는 은행 위기의 확산과 경기침체 현실화인데요. 우선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집니다. 따라서 5월 금리가 오른 후 인상이 중단되고, 당분간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수석 투자 전략가는 "데이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최종금리에 도달하면 (금리는) 한동안 그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월스트리트는 곧 시작될 실적 시즌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오는 금요일 대형은행들이 포문을 여는데요. 월스트리트는 팬데믹 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 시즌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BNY 멜론 웰스 매니지먼트의 알리시아 레빈 수석 전략가는 "수익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고, 불황은 예상보다 더욱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며 "지난 5주 동안 실적 추정치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적 시즌이 시작되기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