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강동원 기자] 선두 자리는 외롭고 괴롭다. 언제나 경쟁자보다 한 발 더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끊임없이 자기 개발·투자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새 방식을 찾는 개척자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부담감은 막중하나 보상은 달콤하다. 1등 주자에는 찬사가 쏟아지고 달라진 평판은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선두에 도전한다.

지난해 증권업계에서는 KB증권이 각종 기업금융(IB) 리그테이블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 기업공개(IPO) 부문 활약이 도드라졌다. 연초부터 역대 최대 공모 규모(12조7500억원)를 기록한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시켰다. 빅 딜(Deal) 주관 경험이 적다는 시장 우려가 나왔지만, 일반 공모청약에서 증거금 114조원을 끌어모으며 보란 듯이 흥행했다.

하반기에는 신한투자증권과 더블유씨피(WCP) IPO를 공동 대표 주관하며 경쟁자를 따돌렸다. WCP는 공모 흥행에 실패했으나 2조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증시에 상장했다. 이 덕분에 KB증권은 '빅3' 꼽히는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각종 IB 관련 시상식을 휩쓸 수 있었다.

KB증권은 올해도 대어급 IPO를 예고하며 실적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지난해 활약이 '반짝'에 그치는 모양새다. IPO 대표 주관 업무를 맡은 기업 중 공모 예정 기업이 없어 상반기 실적은 리츠 1건에 그칠 전망이다. 기대주로 꼽힌 LG CNS(4조~5조원)마저도 공모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WCP IPO 후폭풍도 불고 있다. 일부 기관투자가가 공모 과정에서 KB증권이 가격 담합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들은 수요예측 참여가 저조하자 KB증권이 공모가 희망밴드(8만~10만원) 하단인 6만원대에 주문을 넣으라 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자 5만원대를 제시한 기관투자가에 주문량보다 많은 주식 배정을 했다고 말한다.

KB증권은 규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잡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몇몇 기관투자가들은 당분간 KB증권이 주관하거나 연관된 딜에는 관심을 끌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나 최근 KB증권이 최대 400억원 규모로 조성한 KB스팩24호가 수요예측 부진에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지면 후속 딜 역시 악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KB증권은 LG CNS 외에도 휴맥스모빌리티(대표주관)와 두산로보틱스(공동주관) IPO 등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사람이 급격하게 성장할 때 나타나는 신체 변화가 성장통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KB증권도 몸집이 커지는 과정에서 이를 겪는 모양새다. 더군다나 KB증권은 그간 IPO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증권사다. 그래서 시장 관계자들의 잣대가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다행인 점은 KB증권의 지난해 활약이 결코 '운'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성현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들이 밤낮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이것이 결실을 봤다. 그동안 준비한 기업들의 상장예비심사 청구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의 성장통만 무사히 넘겨낸다면 반등의 여지가 있다. 1등을 향한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있었다. 하반기 달라진 KB증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