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는 '뚝심'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이 수식어에는 정 회장이 변화무쌍한 경영 환경에서도 흔들림 없는 리더십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다. 혹자들은 뚝심경영이 정 회장의 할아버지이자 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이어진 전통 철학이라며 묵직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정 회장은 최근 '관세 전쟁'의 근원지인 미국 백악관에서도 뚝심을 발휘했다. 특히 국내를 넘어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패권을 다투는 경쟁사 CEO 보다 한발 앞서 백악관에 발을 디딘 점이 고무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완성차 판매 3위를 달리고 있는데 1위 기업은 바로 이웃나라 일본 도요타자동차그룹이다.
정 회장의 백악관 발표는 글로벌 산업계를 술렁이게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정 회장은 2028년까지 미국에서 자동차와 미래 산업 분야 등에 21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차는 위대한 기업'이라며 화답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이날 발휘한 뚝심은 관세 충격을 흡수할 완충제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4월부로 자국에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예외없이 부과하겠다고 선포하면서 국내·외 완성차 업계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현대차그룹도 당장 수입차 관세를 피하기 어렵게 됐지만 업계에서는 31조원 대규모 투자가 향후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카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 회장 특유의 뚝심경영은 이미 올해 초 한차례 방향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 회장은 지난 1월 임직원들에게 전하는 신년 메시지에서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왔고 어떤 시험과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현대차그룹 DNA를 지니고 있다"며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현대차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수소 사업에서도 정 회장의 뚝심이 묻어난다. 먼저 현대차그룹 차원에서는 수소 사업 브랜드 'HTWO'를 운영 중이다. 현대차의 경우 그룹 핵심 계열사 답게 연초부터 수소 사업 확장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7년 만에 수소연료전지차 '넥쏘' 후속 모델을 공개도 앞두고 있다. 또 지난 20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에 '수소 사업 및 기타 관련 사업'을 사업 목적으로 새롭게 추가했다.
정 회장은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이래 수소 사업을 꾸준히 챙겨왔다. 넥쏘는 정 회장이 2018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해에 출시된 야심작이기도 하다. 여기에 '수소는 후대를 위한 것'이라는 정 회장의 발언은 업계에서 고유명사처럼 회자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두 수소 사업을 키워내겠다는 정 회장의 확고한 의지를 방증하는 사례들이다.
수소는 엄밀히 말해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은 미지의 분야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현대차는 글로벌 수소차 시장에서 3836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는 1년 전보다 25% 감소한 수치다.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역설적인 환경이 펼쳐지는 셈이다. 수소차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으로는 충전 인프라 부족, 수소 생산·저장 비용 문제 등이 지목된다.
트럼프발 관세 리스크와 신사업 성장통이 맞부딪히는 지금이야말로 뚝심이 진가를 발휘할 최적의 시점이다. 뚝심이라는 표현이 다소 고전적이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힘이야말로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가 돼 줄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의 뚝심 있는 행보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갈 경영 교본으로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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