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령 기자] 국내 의료기기업체들이 미국발 '관세 폭탄'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진단기기·임플란트·미용의료기기 등 주요 수출품목을 대상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현재 관세 시행은 90일 동안 유예됐지만 일시적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경우 선제적인 대응에 따라 뚜렷한 온도 차가 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품목 다변화가 핵심 생존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일부터 10%의 기본 관세가 발효됐고 9일부터는 한국 25%, 일본 24% 등 국가별 상호관세가 추가로 적용됐다. 그러나 하루 만에 트럼프 행정부는 입장을 선회해 국가별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고 기본 관세 10%만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 유예는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아 향후 다시 상호관세가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가시화된 불확실성이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주요 의료기기 기업들은 대부분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관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일부 기업들은 이미 선제 대응책을 마련했거나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춰 온도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바디는 일단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인바디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북미 시장에서 올렸으며 미국 해병대 및 프로 스포츠 구단 등과의 거래를 통해 외연 확장을 이어왔다. 하지만 현재 판매 중인 모든 제품을 천안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관세 부과 시 직격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바디 관계자는 "미국 현지 법인과 함께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내부적으로 세부 대응안을 정비 중"이라고 밝혔다.
미용 의료기기기업인 클래시스도 관세 이슈를 주시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고주파 기기 '볼뉴머'를 지난해 10월 미국에 론칭한 데 이어 올해부터 본격적인 매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슈링크와 볼뉴머 등 주요 제품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관세가 그대로 적용된다면 당장 수출 전선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클래시스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변화는 없지만 관세 25%가 실제로 부과된다면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특히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우 미국 현지 자회사 하이오센을 통해 필라델피아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며 현지 생산 비중을 점차 확대해 왔다.
오스템임플란트 관계자는 "현지 생산제품은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임플란트 외 일부 품목은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도 현지 유통사와의 협업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이 회사는 미국 파트너사인 메드트로닉을 통해 제품을 유통하고 있으며 관세 부담은 유통사가 전액 부담하는 구조다. 특히 지난해 말 미국에서 내시경용 지혈재 '넥스파우더'의 하부 위장관(출혈 예방목적) 허가를 획득하고 오히려 현지 매출 확대를 기대 중이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 관계자는 "당사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높아 관세 25%가 붙더라도 미국 내 가장 저렴한 수준"이라며 "회사 입장에선 관세로 인한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진단기기기업 에스디바이오센서 역시 앞서 2023년 미국 체외진단기업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를 약 2조원에 인수하며 원재료 개발부터 생산까지 현지 기반을 마련한 상태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상호관세 이슈에 대해 단기적인 대응을 넘어 국내 의료기기 업계가 중장기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분기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 거점을 미국 등 현지로 이전하거나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 품목군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등 보다 구조적인 대응도 요구되고 있다.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관계자는 "HS코드(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의 세부 분류에 따라 관세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별로 체감하는 영향은 매우 다를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기업별 대응전략 수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