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사태와 자본시장 논쟁
"규제 가로막힌 한국PE 시장, 일본에 뒤집혀"
경직된 노동시장, 유통업 규제…밸류업 한계에 직면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9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국내 PE 시장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록 좋지 않은 이슈로 PE업계에 이목이 쏠렸지만 '마녀사냥'으로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고사시킬 게 아니라 복거지계(覆車之戒)의 계기로 삼아 시장을 더욱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담보인정비율(LTV) 제한 등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진 규제가 추가될 경우 국내 PE 시장이 '글로벌 갈라파고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글로벌 시장에서 외면받았다가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일본 PE 시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 규제 강화→경쟁력 추락…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지난 2021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국내 PE에 대한 차별 이슈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국내 시장은 개정 전까지 해외 PE는 아무런 운용규제를 받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법안 개정으로 '10% 지분투자 룰', 대출 제한 등이 해결됐고 국내 PE들은 해외 PE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국내 PE들은 여전히 과도한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경직된 노동시장 규제 때문이다. 글로벌 PE와의 역차별 문제는 해결됐지만 노동규제에 발이 묶여 있어 한국 PE 시장의 매력이 급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대형 PE 대표는 "PEF 운용사는 피인수기업의 경영 비효율을 개선하고 밸류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며 "그 과정에서 유휴 인력을 구조조정 하거나 일부 사업부를 분리 매각하는 등 효율화 작업이 필요한데 국내에선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인수가 무산된 MG손해보험도 노동 문제가 발목을 잡지 않았나. 홈플러스도 2만명에 대한 인건비 등 높은 고정비용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주 52시간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로 비용이 증가한 반면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졌다. 밸류업이 가로막히고 종국엔 엑시트 길도 닫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은 꽤 높은 편이다. 미국 유력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2025 경제자유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평가대상 184개국 중 종합 순위 17위로 '자유'보다 한 단계 낮은 '거의 자유' 등급을 받았다. 재단은 법치주의, 규제 효율성, 정부 규모, 시장 개방성 등 4개 분야, 12개 항목 점수를 매겨 등급을 5단계로 나눈다.


한국은 전체 12개 평가항목 중 노동시장 분야에서 최하점을 받았다. 노동시장 항목은 근로 시간, 채용, 해고 등 규제가 경직될수록 낮은 점수를 받는다. 한국은 2005년 해당 항목 신설 이후 가장 낮은 '억압'이나 그 위 단계인 '부자유' 등급을 계속해서 받았다.


산업 규제 역시 완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령 대형마트에 대한 월 2회 의무휴업일 규제 및 심야영업 제한 유연화, 온라인 배송 허용 등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해 국내 유통시장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국내 PE 대표는 "PE들은 5~8년 전 인수한 기업을 매각해야 하는데 그동안 규제는 계속해서 강화돼 왔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라며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는 주말 매출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주말 영업일의 4분의 1을 날려버렸다. 밸류업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 시내 (사진=픽사베이)

◆ 베인캐피탈 "서울보다 도쿄오피스가 더 낫다"


이런 상황에서 PE업계는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시장은 글로벌 투자시장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로 여겨져 왔다. 버블 붕괴 이후 글로벌 트랜드를 쫓아오지 못하는 '촌스러운' 시장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외 PE들이 앞다퉈 투자하는 글로벌 핵심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일본 PE 시장은 최근 꽃을 피운 모양새다.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딜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지난해 6월 디지털 만화 플랫폼 메챠코믹 운영 업체 인포컴이 약 2조7200억원(2700억엔)에 거래되고 한 달 뒤인 7월엔 일본 의약품 제조업체 아리나민제약이 약 3조5200억원(3500억엔)에 팔렸다. 12월에는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복합 시설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가 약 3조8500억원(26억달러)에 매각됐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일본 제약사 미쓰비시다나베파마가 약 5조1400억원(5100억엔)에 거래됐고 최근에는 대형 유통 업체 세븐&아이홀딩스의 슈퍼마켓, 외식 등 사업부문이 약 7조600억원(7000억엔) 규모로 매각이 추진 중이다. 세븐&아이홀딩스는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의 모기업으로 지난해 약 70조5600억원(7조엔)에 매각할 것을 제안받았다.


일본 PE 시장이 활황인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규제 유연화가 최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버블 붕괴를 거치면서 일본 사회 전반에 PE에 대한 개방적 분위기가 깔려있는 상황에서 규제도 자유로워 대규모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PE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과 비교해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 대기업 또는 대기업 계열사가 매물로 나왔을 때 밸류업 계획을 짜기가 용이한 구조"라며 "그러다 보니 수조원, 수십조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대형 거래가 잇따라 나오면서 글로벌 PE 사이에서 도쿄오피스 위상은 빠르게 격상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IT 등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한국이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투자처로 꼽혔지만 최근에는 일본에 밀려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글로벌 PE 베인캐피탈은 서울오피스보다 도쿄오피스를 높게 쳐주고 있다고 한다. IB업계에 따르면 베인캐피탈 도쿄오피스는 지난 2023년 4개의 딜을 통해 원금대비수익률(MOIC) 기준 6~7배의 이익을 거뒀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내며 서울오피스를 큰 격차로 따돌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베인캐피탈은 지난해 일본 투자를 과거보다 2배 늘린 100억달러 규모로 늘릴 계획을 세웠다.


한 글로벌 PE 관계자는 "일본 시장은 노동, 산업 등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규제가 유연한 면이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와 같이 플레인바닐라(Plain-Vanilla‧단순 구조 상품) 딜이 아닌 다양한 구조의 딜이 발생하고 점점 선진화돼 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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