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관점]
이복현 원장이 남긴 유산
①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그의 앞날에 대해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4일 18시 0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긴급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제공=금융감독원)


[딜사이트 박종인 논설위원] 불확실한 현재가 일거에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순식간에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에서 터진 '와~'하는 함성으로 개벽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어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3년 가까이 대한민국 금융을 호령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금감원) 원장입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에게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말리는 바람에 일단 사표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함성이 터지기 이틀 전, 그러니까 지난 2일, 한덕수 권한대행이 상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 이 원장이 한 말인데요, 공식적으로는 사표를 내지 않았으니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지만 더 이상 주요 업무를 수행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 헤드라인 뉴스를 생산해내던 그의 엄청난 추진력은 사실 그가 사표를 운운한 순간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4일 재판정 함성과 함께 아주 조그맣게 쪼그라들었습니다.


◆ 금융을 떠나는 이복현


안 그래도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 금융계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데요. 압도적인 건 그가 광장(혹은 공원)을 건널 거라는 전망입니다. 동쪽 여의도에서 서쪽 여의도로 진출한다는 건데요.


지난 2년간 명동과 여의도에서, 그리고 그 이전 서초동에서 보여준 그의 비상한 업무 능력과 정무 감각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로 들립니다. 성공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다만 문제는 정치를 하면 어느 편에서 시작하느냐인데요. 이게 좀 애매하죠.


전력으로 볼 때 좀 더 가까워 보이는 국민의힘(국힘)부터 볼까요.


"어서 오세요, 저희에게는 당신이 큰 힘이 됩니다"하고 국힘이 그를 반갑게 맞이할까요?


당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두 명의 주요 인사가 탐탁지 않아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첫째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한홍 의원인데요. 지난달 18일 윤한홍 위원장은 이 원장에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날렸지요.


이 원장이 "(상법 개정안과 관련) 직을 걸겠다"고 하자 윤 위원장은 "직을 걸겠다는 표현을 왜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금감원장은 (상법 개정안) 업무를 직접 핸들링하는 라인도 아니다. 소신을 밝히는 건 좋은데 직을 걸겠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조심하시기 바란다"라고 지적했다고 언론에 보도됐는데요. 한 마디로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충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명의 유력인사는 권성동 원내대표인데요. 지난 2일 이 원장이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와 관련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권 대표는 "당연히 사직서를 제출하고 짐 싸서 떠나는 게 공인의 올바른 태도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태도"라고 말한 뒤 "오만하다, 내 공직 경험으로 비추어 있을 수 없는 태도"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이 원장을 비판했습니다.


이런 반대 정서를 뚫고 국힘에서 뭔가 역할을 맡기는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 동여의도에 새바람 일으킨 이복현


다음은 더불어민주당인데요. 저는 오히려 이쪽이 이 원장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첫째는 그의 반재벌 정서입니다. 이 원장의 이런 성향은 사실 여의도에서 형성됐다기보다 서초동에서 길러진 것으로 봐야 할 텐데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고, 26세에 공인회계사 자격을 따고, 28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32세에 검사가 된 그는 전공인 증권과 금융 관련 수사를 도맡아 하면서 증권거래법과 자본시장법 등에 대한 수사지식을 쌓은 뒤 33세 4년차 검사로 대검 중수부에 차출됩니다.


이후 윤석열·한동훈 검사 등과 현대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경제범죄를 다루면서 검찰에서 '경제통'으로 자리 잡았고,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 수사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이런 검사시절 수사 이력을 감안하면 상법 개정 등의 이슈에서 반재벌 성향이 나타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둘째는 반(反)모피아 성향입니다.


이 원장은 지난해 우리금융그룹 임종룡 회장과 대립각을 세워 '반모피아'란 타이틀을 확보했는데요. 국내 금융권에서 모피아(옛 재무부 이재국 출신 경제관료 그룹)가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 원장의 행보는 어쩌면 신선하기까지 했습니다.


사실 금융감독원장 자리는 금융관료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그래서 '금융감독원장=모피아'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는데요. 그 공식을 보기 좋게 깬 게 이 원장입니다. 검사 출신 첫 번째 원장이기도 한데요. 참고로 역대 금감원장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원장이 15대인데요, 그 앞을 거쳐 간 분은 초대 이헌재, 2대 이용근, 3대 이근영, 4대 이정재, 5대 윤증현, 6대 김용덕, 7대 김종창, 8대 권혁세, 9대 최수현, 10대 진웅섭, 11대 최홍식, 12대 김기식, 13대 윤석헌, 14대 정은보 등 14명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모피아가 아닌 분은 금융연구원 학자 출신 11대 최흥식 원장과 참여연대 출신 12대 김기식 원장, 그리고 학자 출신 13대 윤석헌 원장 등 3명인데요. 최흥식 원장은 6개월, 김기식 원장은 1개월 만에 자리에서 내려온 단명한 원장입니다. 흥미로운 건 모피아 출신이 아닌 이 3명의 원장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는 점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피아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 건데요.


이렇게 보면 이 원장이 지금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던 건 '보수정권' 때문이라기보다는 '검사정권' 덕분으로 봐야 정확할 겁니다. 더 흥미로운 건 문재인정부에서의 학자 또는 시민단체 출신 금감원장이 모두 실패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이 원장은 나름 성공적이란 것입니다.


그가 어떤 노하우로 조직을 장악하고 금융권을 좌지우지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의 반재벌, 반모피아 체질이 더불어민주당과 더 어울린다는 걸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복현 원장의 건투를 빕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관련종목
관련기사
박종인의 관점 5건의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