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 추심으로 사세를 키운 한빛자산관리대부가 금융업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심에 선 건 저축은행 인수다. 올 들어 HB저축은행 지분 과반을 확보한 데 이어, 참저축은행 경영권까지 사들였다. 듀얼뱅크(Dual Bank) 체제를 구축한 한빛자산관리대부의 저축은행 인수합병(M&A) 전략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양해, 문지민 기자] 한빛자산관리대부(이하 한빛대부)가 올 들어 ES큐브(옛 라이브플렉스) 매각 작업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올해 1월 ES큐브의 손자회사였던 HB저축은행(옛 라이브저축은행)을 HB홀딩스그룹 계열사로 편입한 이후부터다. 일각에선 원했던 저축은행 경영권을 확보하자, 껍데기에 불과한 모회사를 되파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빛대부가 ES큐브를 인수한 건 2년 전이다. 당시 라이브플렉스 지분 32.2%를 741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인수대금은 특수목적법인(SPC)인 '지에프금융산업제1호주식회사(이하 지에프1호)'를 통해 납입했다.
지에프1호를 결성한 건 'HB투자파트너스'다. 이 회사는 한빛대부 최대주주인 양은혁 회장이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한빛대부는 HB투자파트너스가 지에프1호를 운용하는 업무집행사원(GP)을 맡고, 실질적인 인수자금은 한빛대부가 조달하는 구조를 짰다. 한빛대부는 지에프1호 지분을 86%나 보유한 최대 출자자(LP)다. 사실상 '한빛대부→지에프1호→라이브플렉스→태일→라이브저축은행'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한 셈이다.
한빛대부가 이 같은 인수구조를 짠 건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저축은행 지분을 직접 사지 않고, 저축은행을 보유한 모회사를 인수해 종속기업을 거느리는 '우회인수 전략'을 폈다는 분석이다. 또 인수자금을 별도 PEF로 조달해 향후 재매각 통로를 열어뒀다는 평가다.
한빛대부의 저축은행 분리 작업은 라이브플렉스 인수 계약 직후부터 물꼬를 텄다.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2020년 7월 10일 이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우선 라이브저축은행을 라이브플렉스의 손자회사가 아닌 자회사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신호탄을 쏜 건 라이브플렉스타워 매각이다. 본사 건물로 사용하던 부동산을 2020년 7월 13일 경남제약에 매각해 410억원을 확보했다. 3일 뒤에는 계열사인 라이브파이낸셜 지분을 58억원에 처분해 실탄을 마련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당시 라이브저축은행의 모기업인 '태일' 지분을 늘리는 데 활용했다. 264억원을 들여 태일에 대한 실질 지분율을 100%까지 끌어 올렸다. 이 모든 과정이 지에프1호가 실제 라이브플렉스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 2020년 7월 17일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불과 일주일 만에 저축은행 분리를 위한 밑그림을 완성한 셈이다.
본격적인 저축은행 떼어내기 작업이 시작된 건 지난해 4분기 들어서다. ES저축은행으로 사명을 바꾼 라이브저축은행은 양은혁·이서연 부부와 HB파이낸셜(現 HB홀딩스그룹)을 대상으로 4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주당 1만700원에 보통주 신주 373만8319주를 발행했다. 지분율로는 약 40% 수준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로부터 한 달 뒤 ES큐브(옛 라이브플렉스)는 ES저축은행의 모기업인 태일을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한다. 기존 지배구조에서 태일이 빠지고 '한빛대부→지에프1호→ES큐브→ES저축은행'으로 지배구조를 압축했다. 저축은행 분리 작업이 9부 능선을 넘는 순간이었다.
화룡점정을 찍은 건 두 번째 유상증자였다. HB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단 ES저축은행은 지난 1월 28일 HB홀딩스그룹을 대상으로 22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주당 1만원에 보통주 신주 220만주를 발행했다.
신주 전량을 인수한 HB홀딩스그룹은 HB저축은행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공교롭게도 HB홀딩스그룹은 두 번째 유상증자 한 달 전 사명을 HB파이낸셜에서 HB홀딩스그룹으로 교체하며 시장에 혼란을 주기도 했다. 첫 번째 유상증자는 HB파이낸셜로, 두 번째 유상증자는 HB홀딩스그룹이라는 명칭으로 참여한 까닭이다.
HB저축은행이 두 차례 유상증자를 단행한 후 ES큐브의 자산총계는 급감했다. 2021년 12월말 1조827억원에서 올 3월말 1101억원으로 10분의 1 토막 났다. 자산 규모가 큰 HB저축은행이 연결대상 기업에서 제외된 결과다.
업계에서는 우회인수를 활용한 '저축은행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자회사로 포함된 저축은행의 유망성을 보고 투자한 ES큐브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새어나왔다. 일각에서는 HB저축은행 이사회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ES큐브 소액주주들이 HB저축은행 유상증자로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할 경우 다중대표소송을 걸 수 있다"며 "유상증자로 얼마만큼 손해를 봤는지 입증하긴 어렵겠지만, HB저축은행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중대표소송(상법 제406조의2)은 모회사 주주가 불법행위를 한 자회사 또는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현행 상법상 비상장사는 전체 주식의 100분의 1 이상, 상장사는 1만분의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누구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금융당국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법적 제재를 가할 만한 규정이 없더라도, 제도적 보완을 계속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저축은행 감독국 관계자는 "저축은행 대주주 변경승인을 요청하는 경우 지배구조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는 있지만, 현행법상 두세단계 위의 구조까지 모두 파악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다만 2년에 한번씩 진행하고 있는 정기 적격성 심사에서는 보다 심도있게 지배구조를 뜯어보고 문제가 발견되면 제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 인수주체 중 법망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우회인수를 추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당국은 꾸준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이같은 움직임들에 대해 관찰 및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 조사기획국 관계자는 "개별 사안(ES큐브 매각)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유사한 인수합병 사례 분석, 대주주 등극 과정 검토 등 전반적인 사안에 대한 모니터링 여부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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