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딜레마영구채 전환·자사주 소각…몸값 '천정부지'
산업은행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골자로 하는 HMM의 민영화 작업이 시계제로에 빠진 양상이다. 대주주인 산은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 했던 3조2800억원 규모의 영구채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매수 부담을 키웠다. 그렇지 않아도 난항에 빠진 유력 원매자 물색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과 SK해운 인수까지 추진되면서 HMM의 몸값을 부채질하고 있다. 2023년 7월 HMM 경영권 매각의 포문을 연 뒤 2년째 답보 상태에 빠져있는 HMM 새 주인 찾기의 해법을 모색해 본다.

[딜사이트 범찬희 기자] HMM이 민영화의 걸림돌로 지목된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전량 털어냈다. 결과는 예상대로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지배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인수 눈 앞에서 고배를 마신 하림이 제시한 6조원의 2배를 넘어선 것. 이런 가운데 HMM이 2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어 지분 가치 상승을 부채질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 3조2800억원 어치 CB‧BW 100% 전환…산은·해진공 지분율 43%p↑
22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지난 17일 7200억원 규모의 제197회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사모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전환가액 5000원을 적용해 1억4400만주가 새롭게 발행된다. 이들 주식은 채권자이자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절반씩 나눠 갖게 된다. 해당 CB는 지난 2020년 4월 발행된 30년물짜리 영구채로 산은과 해진공이 각각 3600억원 어치씩 매입했다.
또한 기발행 주식 8억8103만9496주에 1억4400만주가 더해지면서 HMM의 총 발행주식은 10억2503만9496주로 늘어나게 된다. 아울러 HMM에 대한 산은 지분율은 33.73%(2억9719만9297주)에서 36.02%(3억6919만9297주)로, 해진공 지분율은 33.32%(2억9359만859주)에서 35.67%(3억6559만859주)로 증가한다.
산은과 해진공이 제197회차 CB까지 전액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더 이상 HMM의 영구채 잔액은 남지 않게 됐다. HMM은 지난 2016년 7월 기존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산업은행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후, 지금까지 운영자금 확보 등의 목적으로 3조2800억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했다.
시기별로 보면 2017년 3월 6000억원 규모 제191회차 CB를 시작으로 ▲2018년 10월 제192회차 CB 4000억원 ▲2018년 10월 제193회차 BW 6000억원 ▲2019년 제194회차 CB 1000억원 ▲2019년 6월 제195회차 CB 2000억원 ▲2019년 10월 제196회차 CB 6600억원 ▲2020년 4월 제197회차 CB 7200억원을 찍었다.

이들 물량 전량은 산은(1억8400억원)과 해진공(1억4400억원)이 사들였다. 산은과 해진공은 전환청구·신주인수 행사기간에 맞춰 권한을 행사해 2021년 10월부터 지금까지 6억1964만7009주의 신주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산은과 해진공의 합산 지분율은 2021년 3분기 28.40%(1억1514만3147주)에서 71.69%(7억3479만156주)로 43.29%p 늘었다.
문제는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이 불어나면서 HMM의 당면 과제인 새 주인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는 점이다. 산은과 해진공은 전환·행사가액 보다 HMM 주가가 높은 상황에서 전환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배임이라고 보고 신주를 취득해 왔다.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주식수가 늘면서 원매자 입장에서 가격 부담이 배로 커졌다는 분석이다.
HMM 경영권 매각 공고가 나온 2023년 7월 무렵과 비교해도 가격차가 확연하다. 산은과 해진공의 보유한 총 지분수 1억9879만156주에 당시 주가 수준인 1만8000원을 적용하면 3조6000억원 가량이다. 하지만 최근 산은과 해진공의 보유 주식분 7억3479만156주에 최근 주가 수준인 1만9000원을 적용하면 14조원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해 하림이 HMM을 인수할 수 있는 우선협상대상 지위를 따내고도 불발에 그쳤을 때 제시한 6조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 인수 부담 키우는 밸류업…HMM "자사주 소각 대상, 정부 보유분 예외 아냐"
업계에서는 HMM이 올해 본격적인 밸류업을 앞두고 있는 만큼 원매자가 산은과 해진공에 지불해야 할 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HMM은 지난 1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올해 안으로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에 나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이 중 5000억원은 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주고, 2조원 어치의 자사주 매입 후 소각도 병행한다. 발행주식수를 줄여 주당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주당 가격을 1만9000원으로 가정하면 1억526만주에 달하는 물량이 태워져 HMM의 총 발행주식수는 9억2000만주 수준으로 줄게 된다. 하지만 산은과 해진공의 합산 지분수인 7억3479만156주는 그대로 유지된다. 해당 주식을 인수하는 데 치러야할 값이 14조원을 넘어서게 되는 셈이다.
밸류업 정책이 HMM의 몸값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안으로 매입 후 소각할 주식에는 산은과 해진공 보유분도 예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다. HMM 몸값 조정을 위해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 산은과 해진공을 포함한 정부 쪽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실행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HMM 관계자는 "3대 주주인 국민연금(4495만3255주·5.16%)까지 포함하면 정부 쪽 지분율이 77%(7억7974만3411주)에 달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소액주주 지분만 소각하면 일각의 우려대로 정부 비중이 더 비대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며 "자사주 소각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만큼 발행주식 전체가 잠재 후보에 올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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