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 시장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작동하지 않았던 신용평가 체계…지나친 두려움도 한 몫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6일 09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태영건설 여의도 사옥. (제공=태영건설)


[딜사이트 백승룡 기자] "혹여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이전에 유의미하게 신용등급을 낮췄을 것 같진 않다"


최근 한 신용평가사 임원이 사석에서 조심스레 꺼낸 말이다. 지난해 말까지 태영건설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로 부여하던 신용평가사들은 워크아웃 신청 발표 직후 CCC등급으로 한순간에 10단계를 낮췄다. 채권의 상환 가능성을 평가해야 할 신용평가사들이 '후행적 평가'로 뒷북을 쳤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명백하게 신용평가사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인 것은 맞지만, 선제적으로 등급을 조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고 한다.


그 어려운 측면이란, 건설사에 대한 신용등급 조정이 자칫 급격한 금융시장 경색으로 이어지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지난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당국 주도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위기관리가 한창인 탓에, 신용평가사들이 '칼춤'을 추기엔 상황이 엄중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 차례 등급 조정 시기를 놓친 만큼, 신용평가사들도 신뢰 회복을 위해 올해는 적극적이고 다소 공격적으로 등급 조정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마다 주요 금융당국 회의에서는 신용평가업계 담당자들에게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하지는 말아 달라는 '협조' 요청을 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위기론이 반복해서 회자되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켜 위기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협조를 통해 위기를 넘기면 다행이지만, 정부가 모든 위기를 통제할 수 있지는 않다. '안전하다', '문제없다'는 메시지가 항상 답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불편한 경고음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직후, 이달 초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형 건설사 한 곳이 태영건설과 같은 유동성 리스크를 겪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시장 안팎에서 파장이 커지자 해당 보고서는 하루 만에 삭제됐다. 과연 정부나 특정 기업만의 문제일까. 개인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에코프로에 대한 매도 리포트를 작성한 한 애널리스트는 출근길에 주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설 자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강조한 경제학자 슘페터는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경제발전이 이뤄진다고 했다. 경고음이 자유롭게 울리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창조도, 더 나은 발전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고음이 울리게 된 그 상황이고 따라서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중요하지, 경고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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