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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 라면값 인하, 자본시장엔 득보다 실
주주·기업가치 훼손 부작용···'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
이 기사는 2023년 06월 28일 08시 4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라면(제공=농심)


[딜사이트 정호창 부국장] 대표적 서민 식품인 라면 가격이 내릴 전망이다. 시장 1위 기업인 농심을 필두로 삼양식품이 출고가 인하를 선언했고 오뚜기, 팔도 등도 곧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라면 제조사들의 자발적인 결정은 아니다. 정부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값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한 결과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8일 방송에 출연해 '기업들이 라면값을 적정하게 내렸으며 좋겠다'고 포문을 열었고, 21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가능성 조사까지 언급하며 거들고 나섰다. 26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분업체들을 불러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했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에 결국 업계 선두인 농심이 가장 먼저 백기를 들었다. 농심은 대표 제품인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내달부터 각각 50원, 100원씩 내리기로 했다. 이로 인한 연간 매출 감소액은 200억원, 밀가루값 하락에 따른 비용 절감액은 8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라면값이 싸지는 걸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자본시장을 취재하는 경제지 기자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공급과 수요, 시장 경쟁 등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물가 관리를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관치'의 산물인 탓이다.


정부가 가격 통제 등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단기적으론 물가 안정 효과 등을 볼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여러 부작용이 뒤따른다.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줘 주주가치 훼손, 경쟁력 하락 등의 문제를 불러오거나 심한 경우 시장경제 왜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농심만 하더라도 이번 결정으로 연간 120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거둔 영업이익(1121억원)의 10.7%에 해당한다. 주주 입장에선 한 주당 1973원의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지난해 배당액(주당 5000원)의 40%에 육박하는 금액을 손해보는 셈이다.


추 부총리의 발언 다음날 증시에서 농심 주가는 6.05% 하락했다. 삼양식품 주가도 7.79% 급락했다.


정부 산하 공기업도 아니고 공적자금이 투입되지도 않은 민간기업과 그 주주들이 이런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나친 폭리를 취하고 있어 사회적 제재가 필요한 기업도 아니다. 농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58%에 불과하다.


결국 내년 봄 총선을 앞둔 정부가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소비재 물가 관리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라면과 밀가루 다음에는 빵, 과자 제조업체들로 타깃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우리 증시는 규모에 걸맞지 않게 매우 저평가된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금융 시스템이나 기업 활동에 여전히 '관치'가 존재한다는 점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정치권이 기업의 존재이유인 '이윤 추구'를 죄악시하거나, KT·포스코 등 민영화 기업의 지배권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풍토 등이 여전한 탓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익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셈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특정 기업의 희생으로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하책이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회복을 기치로 내건 정부라면 더더욱 지양해야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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