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보라 기자] 수주 물량이 줄면서 DB하이텍의 재고자산이 줄고 있다. DB하이텍이 주력하는 8인치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는 수주형 사업으로 완제품이 바로 매출로 이어지는 만큼 재고자산은 대부분 원재료가 차지한다.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수요가 꺾이면서 DB하이텍도 원재료 구매, 공장 가동률을 줄이는 모습이다. 이는 향후 매출, 영업이익 등 실적 지표 등에 반영될 전망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DB하이텍의 재고자산 잔액은 697억7200만원으로 전기대비 5.14% 감소했다. 

일반 기업에서 재고가 줄어든다는 것은 호재다. 하지만 파운드리 업체의 경우 주문 생산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완성품이 재고 자산으로 쌓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파운드리 업체의 재고자산은 대부분 원재료인 경우가 많다. DB하이텍의 재고 자산 감소는 주문량 감소로 인한 원재료 확보를 줄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DB하이텍의 원재료 재고자산은 지난해 3월 말 614억원, 지난해 6월 말 612억원으로 비슷했으나 지난해 9월 말 들어 577억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DB하이텍 매출은 전력반도체(A&P), 이미지센서(CIS) 등 8인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에 편중돼 있다. 수요는 있으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구형(레거시)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견조한 실적을 내왔다.

그러나 고금리, 고물가 타격이 길어지면서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팹리스는 물론 DB하이텍이 속한 파운드리 업계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DB하이텍의 수주 잔고는 총 1억523만달러(약 1364억원)로 전기대비 13.97% 줄었다. 고객사 수요가 축소되면서 생산 지표인 가동률도 지난해 9월 말 94.96%로 전기 말 대비 2.72%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3월 말과 6월 말 가동률은 97%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련 전방업체에 재고가 쌓이기 시작한 데다가 연초가 전통적인 비수기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주요 집적회로(IC) 디자인하우스가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는 웨이퍼 투입량을 더 줄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8인치 웨이퍼 공장(팹) 업계 가동률은 지난해 3분기 말 80% 중반, 같은 해 4분기 말 70%대까지 내려간 상태다. 올 상반기에도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8인치를 중심으로 레거시 노드 파운드리 가동률이 하락 중"이라며 "업계 전반적인 레거시 노드 가동률이 전년 90% 수준에서 최근 70% 수준으로 내려갔으며 일부 파운드리 업체는 10% 수준의 단가 인하까지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거시경제(매크로) 환경이 나빠지면서 삼성전자의 8인치 파운드리 공장도 사실상 잠정 휴업상태"라며 "이를 고려하면 DB하이텍의 올해 1분기 가동률은 지난해 말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새 먹거리로 꼽은 전장 반도체의 경우 소재인 8인치 실리콘카바이드(SiC)의 상용화가 늦어지는 만큼 공정상 근시일 내 도입이 쉽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인치 시스템 반도체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까지 커졌다. 최근 반도체 장비 회사는 8인치 시스템 반도체 장비 재조를 재개하고 있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코로나19 동안 수급불균형으로 과도하게 올랐던 8인치 시스템 반도체 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떨어지면 DB하이텍의 영업이익 등 실적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