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기르는 거위 이름은 엔지켐생명과학(시가총액 1804억원·연매출 230억원)이다. 매달 1억원 가치가 넘는 황금알(보수)을 낳는 '캐시구스(Cash goose)'다. 거위는 재작년 17억원, 지난해 20억원어치의 황금알을 낳았다. 올해는 3분기까지 9억원을 회장님에게 안겼다. 2년여간 총 40억원 넘는 거금을 벌어다 준 영물이다.

회장님은 거위를 애지중지 키우고 있다. 거위의 소유권은 여럿이 나눠 갖고 있지만, 거위가 낳는 황금알은 대부분 회장님 몫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거위를 함께 키워온 20년 지기 부회장에겐 몫을 나눠주고 있다. 지난해 약 5억원, 올 들어선 3억원어치의 황금알을 넘겨줬다.

옆집 거위들과 비교하면 회장님네 거위는 유독 커다란 황금알을 쑥쑥 잘 낳는 편이다. 건강상태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알의 크기만 놓고 보면 그렇다. 작은 체구가 버거울 정도로 거대한 황금알을 낳고 있다.

몸집이 비슷한 퓨처켐(시가총액 2102억원·연매출 118억원) 거위는 지난해 5억원 넘는 황금알을 단 하나도 낳지 못했다. 등기이사 다섯명에게 돌아간 황금알은 전체 4억3000억원어치에 불과했다. 한 명 당 1억원이 채 되지 않는 값어치다.

씨티씨바이오(시가총액1741억원·연매출 1403억원) 거위도 마찬가지였다. 퓨처켐 거위보다 많은 평균 3억원대 황금알을 낳았지만, 엔지켐 거위가 낳은 황금알에 비할 바가 못 됐다. 덩치가 더 큰 한국파마 거위(시가총액 2825억원·연매출 796억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황금알을 낳아 최대주주를 기쁘게 하는 데는 엔지켐 거위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빗대긴 했지만 엔지켐 본연의 경쟁력은 답보 상태다. 최근 3년간 엔지켐이 기록한 매출은 상장 전 추정치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600억원 이상을 기대했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반대로 그만큼의 손실을 냈다. 올 3분기까지 누적된 결손금만 1411억원에 달한다. 올 4월엔 호중구감소증 임상 2상도 자진 중단했다. 여러모로 부침을 겪고 있다. 회장·부회장 보수로 50억원 넘는 돈을 책정한 것과는 괴리가 크다는 게 중론이다.

엔지켐은 지난 3월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1658억원을 조달했다. 흥행에 실패하며 주관사인 KB증권이 실권주를 대거 떠안았다. 자금 출처야 어찌 됐든 거위의 배는 부풀어 올랐다. 커다란 황금알을 계속해서 낳을 여건은 갖춰진 셈이다.

거위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무리하게 황금알을 낳는 일을 반복할 것이냐, 몸집을 키우는 성장을 우선시할 것이냐. 결단은 회장님만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위 소유권의 7할은 소액주주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