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 문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을 두고 의문이 나온다. 과거 세 번째 임기에 오른 회장들은 금융당국과 노조 등의 반발에도 새 기준인 주주총회 찬성률 75%를 웃도는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총 의결요건을 강화하더라도 회장 후보를 추리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장기 재임을 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금융지주 회장 연임 요건을 강화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설명했다. 연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임추위와 주주총회의 의결요건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개선안은 당정 협의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개선안에 따르면 회장 선임을 위한 주총 의결요건은 최초 선임과 연임, 세 번째 임기 진입 단계에 따라 강화된다. 최초 선임 때는 현행처럼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을 받으면 된다. 연임 때는 상법상 특별결의 수준인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3연임에 도전하려면 출석 주주의 4분의 3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절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임추위 요건도 함께 강화된다. 회장 후보를 최초로 추천할 때는 임추위 위원 3분의 2 이상, 연임과 3연임 때는 4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임추위원장이 주총에서 후보 추천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임추위원장에게도 책무구조도를 적용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는 당초 3연임을 법으로 금지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하지만 민간 금융회사 경영진의 임기를 법으로 묶는 데 대한 반론이 이어지면서 의결요건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금융지주 회장들의 주총 의결 결과를 새 기준에 대입하면 제도 강화의 한계가 드러난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과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 김기홍 JB금융 회장은 모두 세 번째 임기를 앞두고 금융당국이나 노조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세 사람 모두 출석 주주 75%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50% 이상이라는 강화된 의결요건을 충족했다.
김정태 전 회장의 3연임은 금융당국과의 정면충돌 속에 이뤄졌다. 금융당국은 2017년 말부터 금융지주 최고경영자의 '셀프 연임'을 문제 삼았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1월 특혜대출 의혹과 채용비리 관련 검사 등을 이유로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 선출 절차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추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김 회장을 최종 후보로 확정했고 노조는 회추위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김 회장은 2018년 3월 주총에서 출석 주주 84.6%의 찬성을 얻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주총에 오른 사외이사 선임 안건들이 99%대 찬성률로 통과된 것과 비교하면 반대가 적지 않았다. 김 회장 선임 안건에만 3490만주의 반대표가 몰렸지만 찬성률은 새 기준보다 9.6%포인트 높았다. 발행주식 총수 대비 찬성률도 66.72%로 강화된 기준을 16.72%포인트 웃돌았다.
김 전 회장의 네 번째 임기 선임에서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2021년 주총에서 출석 주주 82.1%의 찬성을 얻었고 발행주식 총수 대비 찬성률은 58.99%였다. 2018년보다 찬성률이 낮아졌지만 두 요건 모두 새 기준을 충족했다. 특히 발행주식 총수 대비 찬성률은 기준을 8.99%포인트 웃돌아 비교 대상 가운데 가장 근접했다.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의 3연임은 상대적으로 순탄했다. 윤 전 회장은 2017년 리딩금융 자리를 되찾았고 이후 3년 연속 3조원대 순이익을 내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다. KB금융 노조협의회가 회장 추천 절차를 3연임을 위한 요식행위라고 비판했지만 회추위는 2020년 9월 윤 전 회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윤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임시주총에서 출석 주주 97.32%의 찬성을 얻었다. 발행주식 총수 대비 찬성률도 68.67%에 이르렀다. 같은 주총에서 우리사주조합이 주주제안으로 올린 사외이사 후보 2명은 찬성률이 각각 4%대와 3%대에 그쳐 부결된 것과 대비된다. 회장 선임 안건에는 압도적인 찬성표가 몰린 반면 주주 측이 제안한 이사회 진입 시도는 높은 지지를 얻지 못한 셈이다.
현직 회장 가운데 유일하게 3연임 중인 김기홍 JB금융 회장은 '셀프 연임' 논란을 겪었다. JB금융은 앞서 지배구조 내부규정을 고쳐 최고경영자 연령 제한을 '재임 중 만 70세'에서 '선임 시점 만 70세 미만'으로 바꿨다. 기존 규정대로라면 1957년생인 김 회장은 세 번째 임기 도중 물러나야 했다. 광주은행 노조는 3연임을 위한 셀프 개정이라며 반대 투쟁에 나섰다.
JB금융 임추위는 2024년 11월 만장일치로 김 회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개선안이 제시한 임추위 요건인 4분의 3도 넘어선 셈이다. 김 회장은 2025년 3월 주총에서 출석 주주 99.72%, 발행주식 총수 대비 81.49%의 찬성을 얻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특히 JB금융 사례는 주총뿐 아니라 임추위 의결요건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장기 재임을 견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령 제한 규정 변경을 둘러싼 논란에도 임추위는 만장일치로 현직 회장을 추천했고 주총에서는 사실상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문제는 금융지주 회장 선임의 실질적인 경쟁이 주총 이전에 끝난다는 점이다. 금융지주 주총에서 회장 선임 안건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주총에 올라오는 후보가 통상 임추위에서 최종 선정된 단독 후보인 만큼 주주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사실상 찬성과 반대뿐이다.
금융지주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높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권고도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을 미친다.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에 주요 의결권 자문사까지 찬성을 권고할 경우 주총에서 반대표를 결집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주총에서 몇 %의 찬성을 받느냐보다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회장 후보를 결정하느냐다. 금융권에서는 의결정족수를 높이는 것보다 임추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추위는 통상 사외이사들로 구성되지만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선임 과정에서 현직 회장의 영향력이 작동할 여지가 있다면 회장 후보를 심사하는 기구가 경영진을 견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특히 현직 회장이 재임 기간 사외이사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들이 다시 회장의 연임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라면 임추위 의결요건을 높여도 독립적인 심사를 담보하기 어렵다. 임추위 위원 4분의 3 이상이 찬성하도록 기준을 강화하더라도 위원 구성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다면 높은 찬성률은 실질적인 견제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 지배구조를 재확인하는 절차에 그칠 수 있다.
금융당국의 개선안에는 임추위원장의 후보 추천 사유 설명과 책무구조도 적용 등 책임성을 높이는 장치가 담겼지만, 후보군 관리와 임추위 구성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제도의 실효성을 가를 전망이다. 후보 선정 과정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결요건만 높이면 오히려 장기 재임에 제도적 정당성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5%라는 높은 문턱을 넘은 회장은 주주의 압도적인 신임을 받았다는 명분까지 얻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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