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있는 뉴노멀 시대, 정기선 HD현대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달 회장 취임 1주년을 맞이한 그의 리더십 아래 그룹 전 계열사가 일제히 신성장동력 발굴에 뛰어들고 있다. 정 회장의 강점은 적재적소의 투자다. 실패 확률을 극한으로 줄이면서 AI 시대 ‘삽과 곡괭이’를 차지할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최근 HD현대는 AI 시대 수혜 기업의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룹 내 중추인 HD현대중공업을 포함한 대부분 계열사가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경신 중이다. 지주사 HD현대의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22조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2% 증가했고 같은기간 영업이익은 71.5% 늘어난 2조9197억원으로 집계됐다. 조선·건설기계·에너지·전력기기 등 전 계열사가 성장세를 이어갔다.
사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순간이다. HD현대(당시 현대중공업그룹)는 2010년대 초 해양 원유·가스 시추선 및 생산설비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경험 미숙을 드러내며 공정 지연, 인도 거부 사태를 겪었고 그룹 자체가 휘청거리는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2014년 영업손실 3조2000억원 기록한데 이어 2018년 단행은 울산 해양공장 가동 중단과 전사적 희망퇴직은 상흔으로 남았다.
이에 HD현대는 권오갑 명예회장 체제 아래 리스크 분산과 쇄신을 위한 사업구조 재편에 돌입했다. 2017년 현대중공업을 지주사와 6개 부문 기업으로 분할 개편하는 동시에 비조선 부문 육성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HD현대오일뱅크(정유)와 HD현대일렉트릭(전력기기), HD건설기계(건설기계·엔진) 등이 그룹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거듭났다.
그리고 정 회장 취임 이후 HD현대의 사업다각화 전략은 꽃을 피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전사업이다. 조선업에서 축적한 엔진 기술력과 그룹 내 전력 인프라 사업 역량을 결집해 AI 데이터센터 발전설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육상용 발전엔진, 소형모듈원자로(SMR), 비상용 디벨엔진, 초고압 변압기까지 데이터센터용 발전설비 시장의 삽과 곡괭이를 제공하는 메이저 플레이어로 거듭난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HD현대의 성장 이면에 정 회장의 철저한 실용주의 경영이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HD현대의 투자 행보를 살펴보면 쉽게 드러난다. HD현대의 최근 3년간 조 단위 투자는 육상 발전용 엔진 및 소형모듈원자로(SMR) 생산라인 구축에 1조722억원을 투입하는 단 1건에 불과했다. AI 시대가 도래하며 기업들이 앞다퉈 수 십년에 달하는 장기 로드맵을 제시하는 상황에서 HD현대는 국내 10대 대기업 가운데 가장 적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실제 HD현대의 투자 전략은 현금흐름과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골텐스 인수가 그렇다. 골텐스의 인수가액은 3315억원으로 HD현대마린솔루션의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흐름(3241억원)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HD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 생산시설 증설(8336억원 규모) 역시 올해 8월 1조원 규모의 발전설비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수요처를 사전에 확보한 후 투자에 나서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보다 회장 취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 회장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는 올해 8월 HD현대 사장단 회의에서 “우리는 눈앞의 실적에 집착하다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해 혹독한 대가를 치렀던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며 “미래사업을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기술 확산과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 정 회장과 HD현대가 구축해 나가는 미래 청사진을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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