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한국이 자체 AI 모델과 운영 노하우를 쌓아 해외에 팔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처럼 해외 빅테크의 AI 서비스에 의존하면 AI 이용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굳어진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안에서 AI 토큰을 얼마나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
김지현 SK AI위원회 부사장은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AI 대전환: 자본시장의 권력 이동'을 주제로 열린 '딜사이트 경영전략 써밋 2026'에서 기조강연으로 ‘AI 권력이동: 토큰 소비국에서 생산을 넘어 수출국으로'를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토큰은 AI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최소 연산 단위이자 AI 사용료를 매기는 과금 단위다. 김 부사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3월 GTC 2026에서 데이터센터를 토큰을 만드는 ‘AI 공장'으로 규정한 뒤 토큰이 AI 산업을 읽는 기준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이러한 토큰을 주로 소비하는 국가라는 게 김 부사장의 진단이다. 국내 사용자가 주로 쓰는 챗GPT와 클로드, 제미나이 등은 모두 미국 빅테크의 해외 데이터센터에서 구동된다. 한국 사용자가 AI를 쓸 때마다 토큰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료도 미국으로 나가는 셈이다.
해외로 나가는 AI 사용료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토큰 한 개를 만드는 단가는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사용량이 그보다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AI 에이전트가 확산하면 이런 흐름은 더 빨라진다. AI 에이전트는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명령을 이해하고 계획을 세운 뒤 외부 시스템과 데이터를 활용해 작업까지 수행하는 만큼 더 많은 토큰을 쓴다.
김 부사장은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토큰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고 갈수록 AI 사용료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기업이 에이전트를 구성해 AI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정액제가 아니라 별도로 과금하는 정량제를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AI 서비스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국내 데이터센터에서 구동할 독자 AI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부사장은 “한강을 건너는 데 최신 항공모함은 필요 없다”며 문서 작성이나 회의록 정리, 공장 자동화 같은 업무는 오픈웨이트 모델을 활용한 특화 소형언어모델(sLM)이나 온디바이스 AI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이런 모델을 국내 데이터센터에서 운영하면 토큰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사장은 울산에 조성 중인 SK 데이터센터를 사례로 들었다. 장기적으로 1기가와트(GW) 규모로 구축될 예정이지만 초기 100메가와트(MW)는 아마존을 위한 시설이다. 해외 빅테크의 AI 모델을 구동하는 용도로만 쓰이면 데이터센터가 한국에 있더라도 자체 모델을 운영하는 경험을 쌓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한국의 데이터센터는 단순하게 해외 프런티어 모델을 서빙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한국의 모델을 가지고 학습시키고 국내 기업과 공공, 개인이 사용하면서 더 좋은 모델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운영 효율의 중요성도 짚었다. 같은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동일한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탑재하더라도 운영 기술에 따라 토큰 생산량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부사장은 “하드웨어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술이 중요하다”며 “지금 AI 인프라의 병목은 메모리 HBM이지만 메모리 다음에 병목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운영 기술은 해외 수출로도 연결할 수 있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가운데 각국이 독자적인 AI 인프라 확보에 나서고 있어서다. 해외에 데이터센터를 직접 설계·구축·운영해주거나 국내 데이터센터에서 한국 AI 서비스를 해외 이용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한국의 AI 산업 경쟁력은 데이터센터에서 시작하지만 데이터센터만으로는 안 된다”며 독자적인 AI 모델과 이를 구동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국내 공공과 민간에서 다양한 활용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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