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철통 보안' 원칙을 내걸었던 금융권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관련 해킹 사고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신뢰의 보루로 여겨지던 은행에 이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보안망이 속수무책으로 뚫리자 개인 정보는 물론이고 예금마저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금융권을 향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철저한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압박도 커지는 양상이다. AI를 악용한 공격에 같은 기술로 맞설 수 있도록 망분리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과 사고 발생 시 과징금을 크게 부과해 관리 부실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어서다.
금융권을 엄벌해야 한다는 요구는 거세지만, 사고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고 신속한 복구를 뒷받침해야 할 안전망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모습이다. 기술 진화로 해커들의 수법이 날로 정교해지는 가운데, 이번 사태의 진앙지였던 대출모집인 정보 입력란 등 보안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공격도 교묘해질 수밖에 없다. 치밀한 대비도 중요하지만 모든 허점을 사전에 막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방어망이 뚫린 이후 피해에 대응할 사후 장치는 필수다.
대표적인 대비 수단이 바로 사이버보험이다. 사이버보험은 보안 사고에 따른 소비자 배상과 기업의 정보통신(IT) 시스템 복구 비용, 영업 중단 손해 등을 보장해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다각도로 덜어주는 데 초점을 둔다. 또 기업별 보안 수준을 가입 조건과 보험료에 반영하면서 사고 예방 체계를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간접 효과도 낼 수 있다. 기업의 사고 수습을 뒷받침하면서도 취약점 개선 노력까지 촉진하니, 사이버보험에 '사후 안전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만하다.
하지만 기대되는 역할에 비해 사이버보험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5개사의 합산 사이버보험 원수보험료(개인형 제외)는 313억원, 보유계약건수는 6468건에 그쳤다.
사이버보험은 개인정보보호·전자금융거래배상책임과 사이버 패키지 보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은 의무 보험에 해당돼 업종과 관계없이 전년도 매출액이 10억원 이상이면서 기존에 보유한 개인정보 주체수가 일평균 1만명 이상인 기업이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보험 가입 금액은 5000만~10억원으로 정해져 있다.
전자금융거래배상책임 역시 의무보험으로 분류되지만 적용 대상이 금융회사와 전자금융업자 등이라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이버 패키지보험은 기업의 자체 손해와 제3자 배상책임을 포괄적으로 담보하는 임의 가입형 보험이다.
문제는 사이버보험을 둘러싼 인식 부족과 미온적인 규제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보안 사고가 곧 기업의 평판을 훼손하는 치부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책의 방향이 제재와 처벌에 쏠려온 실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이버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조차 보안의 취약점을 인정하는 신호로 비칠까 우려하고, 이는 곧 사고 수습과 피해 구제의 공백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규제의 수준도 기업의 사후 대비 강화를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입의 강제성이 부여되는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만 해도 법정 의무 가입 기준이 10억원 이내에 그치다 보니 보안 사고가 초래할 피해의 무게를 기업이 과소평가하도록 만드는 구조다.
사고를 막을 방패를 두껍게 만드는 일 만큼이나 방어막이 뚫린 후 피해를 흡수할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고도로 발달한 디지털 시대에는 보안 위협을 원천 차단하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사이버보험을 통해 사고 대응 역량을 높이려는 기업의 행보를 책임 경영의 실천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필요하다. 이 같은 인식 전환을 밑거름 삼아 기업이 법정 의무를 간신히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게끔 보험 보장 기준을 현실화하는 사회적 노력이 이어져야 비로소 안전망도 탄탄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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