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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사업을 3번 바꿨다…VC가 믿은 김범석의 응변력
박성준 기자
2026-10-22 08:45:00
④ 월스트리트 사로잡은 '한국의 아마존' 청사진…뉴욕 농구장부터 BCG 출신 미투 창업. NYSE 상장까지
이 기사는 2026-10-21 16:31:24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집 앞까지 이어진 쿠팡 배송.png
쿠팡을 통해 대한민국에 당일 배송에 관한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다. (그래픽=챗GPT)

[딜사이트 박성준 기자] 2021년 3월 11일 미국 뉴욕.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쿠팡의 상장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미국 경제방송 CNBC의 간판 프로그램 '스쿼크 박스(Squawk Box)'에 출연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기업 실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현대사를 꺼내 들었다. 196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달러에 불과했던 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이야기다.


김범석은 쿠팡의 뉴욕 상장을 한국 경제가 만들어낸 기적의 연장선에 놓았다. 수십억달러의 투자금을 끌어모아 한국의 유통 질서를 뒤바꾼 창업자가 월스트리트에 들려준 것은 단순한 기업공개(IPO) 성공담이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시장의 가능성과 그 안에서 쿠팡이 만들어갈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상장 이후에도 배송과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범석의 강점은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상대방도 믿게 만드는 설득력에 있다. 하버드대 출신에 글로벌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거친 이력은 그를 설명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사업의 형태를 바꿔서라도 밀고 나가는 집념이다. 투자자들에게 그가 제시한 성공 방정식은 '한국의 아마존'이었다. 한국에서도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까지 소비자의 구매 경험을 통째로 바꾸는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정작 초기 벤처캐피탈(VC)들이 투자한 쿠팡은 오늘날의 쿠팡과 전혀 다른 기업이었다. 소셜커머스로 시작해 상품 직매입에 뛰어들었고, 다시 자체 물류망을 구축한 로켓배송 기업으로 변신했다. 사업 모델은 세 단계를 거쳤다. 그때마다 더 많은 자본이 필요했지만 김범석은 투자자들을 설득해 새로운 연료를 확보했다. 쿠팡의 성장사는 완성된 사업계획서를 믿고 투자한 VC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업계획서를 계속 바꿔나가는 창업자에게 베팅한 투자자들의 이야기다.

시간을 11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0년 여름, 쿠팡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선보였 때의 사업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음식점과 공연, 미용실 등의 할인 상품을 온라인에서 공동구매하는 소셜커머스였다. 미국에서 그루폰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업자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던 시기였다. 쿠팡 역시 '한국판 그루폰'을 표방한 여러 기업 중 하나인 카피캣으로 지적됐다.


창업 멤버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김범석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BCG 본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함께 사업에 뛰어든 윤선주 이사는 BCG 서울지사와 방송사 PD를 거쳤고, 고재우 부사장은 SK케미칼에서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와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재들이 온라인 할인쿠폰 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이들이 처음 내놓은 사업 구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공동구매였다. 소비자들이 할인 상품을 서로 추천하고, 일정 인원이 모이면 거래가 성사되는 구조였다. 쿠팡이라는 이름에도 할인쿠폰이 터진다는 의미가 담겼다. 당시 김범석은 새로운 소통 방식이 마케팅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소셜커머스만으로는 아마존이 될 수 없었다. 할인쿠폰을 판매하는 사업은 진입장벽이 낮았고, 경쟁자들과 차별화하기도 쉽지 않았다. 김범석은 쿠팡의 사업을 상품 직매입으로 확장했다. 2013년부터 상품을 직접 사들여 판매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로켓배송을 선보였다.


이 변화는 단순히 판매 상품을 늘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사업자의 상품을 연결하던 회사가 재고를 떠안고, 물류센터를 짓고, 배송 과정까지 직접 책임지는 기업으로 바뀌는 일이었다. 자본의 성격도 달라졌다. 소셜커머스가 고객을 모으는 데 마케팅 비용을 썼다면, 로켓배송은 주문이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거대한 물류망부터 구축해야 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밑바탕에는 한국 시장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있었다. 미국에 비해 국토는 좁지만 인구가 대도시에 밀집해 있다는 점이었다. 온라인 구매 수요가 높은 지역에 물류시설과 배송망을 집중하면 배송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미국 아마존이 보여준 성장 방정식을 한국의 인구 구조와 소비시장에 맞게 적용할 여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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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각 투자를 받은 투자자와 투자 계기 목록 (그래픽=챗GPT)

알토스벤처스가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김한준 알토스 대표는 쿠팡 투자와 관련해 한국의 높은 도시 인구 밀도와 온라인 소비시장의 잠재력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한국 시장을 단순히 인구 규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동일한 배송 경로에서 더 많은 주문을 처리할 수 있고, 물류망에 대한 투자가 규모의 경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알토스벤처스와 매버릭캐피탈은 2011년 3월 쿠팡에 총 200억원을 투자했다. 로켓배송이 등장하기 3년 전이었다. 당시 투자금은 고객서비스 개선과 마케팅, 인력 확충 등에 사용됐다. 투자자들이 돈을 댄 기업은 자체 배송망을 갖춘 유통기업이 아니라 소셜커머스 사업자였다.


이들이 처음부터 쿠팡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투자 판단의 중심에는 사업 아이디어보다 창업자가 있었다. 초기 투자자인 파운더콜렉티브는 훗날 쿠팡 투자를 돌아보며 비슷한 아이디어라도 뛰어난 창업자가 실행하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그루폰을 모방하는 사업자는 많았지만 그 사업을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지는 창업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판단이다.


김범석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반드시 정교한 사업계획서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시간을 다시 2008년 뉴욕으로 돌려보자.


주말마다 농구를 즐기던 벤 선 프라이머리벤처파트너스 공동창업자는 농구장에서 김범석을 만났다. 당시 김범석은 앞서 운영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창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쿠팡이라는 이름도, 로켓배송이라는 사업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벤 선이 처음 만난 것은 유망 이커머스 기업의 창업자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선 젊은 기업가였다. 농구장에서 시작된 인연은 이후 투자와 이사회 참여로 이어졌다. 사업이 구체화하기 전부터 형성된 인간관계가 창업 초기의 자본 조달로 연결된 사례다.


벤 선은 쿠팡 상장 이후 공개한 회고에서 김범석의 큰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와 집요한 실행력,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범석은 처음 생각한 사업 모델을 고집하는 대신 시장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바꿔나갔다.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최초의 아이디어가 끝까지 유지되는지가 아니라, 창업자가 더 큰 기회를 발견했을 때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지였다.


김범석의 변신술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였다. 자체 물류망 구축에는 초기 VC들이 공급한 자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돈이 필요했다. 물류센터와 배송 인력을 확보하려면 단기간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기존 유통기업들이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실패했을 때의 위험도 컸다.


이때 등장한 투자자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다. 소프트뱅크는 2015년 6월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2018년에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20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초기 VC들이 김범석과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발견했다면, 소프트뱅크는 그 비전을 전국적인 물류 인프라로 구현할 수 있는 자본을 공급했다.


김범석이 투자자들에게 설득해야 할 대상도 달라졌다. 초기에는 한국의 소셜커머스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했다. 이후에는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물류망을 직접 구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고객 경험과 시장점유율을 우선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더 큰 기업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쿠팡은 단순한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넘어 소비자가 상품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바꾸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늘 주문한 상품을 다음 날 새벽 문 앞에서 받는 경험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는 배송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대신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주문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쿠팡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주당 35달러, 첫 거래일 종가는 49.25달러였다. 당시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약 886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할인쿠폰을 판매하던 스타트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거대한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순간이다.


물론 쿠팡의 변신이 위험 없는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체 물류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와 빠른 배송을 유지하는 비용, 지속 가능한 수익성 확보는 여전히 중요한 경영 과제다. 투자자별 성적표 역시 투자 시점과 지분율, 회수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쿠팡의 성공이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한 보상을 안겨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쿠팡의 성장 과정은 벤처투자에서 무엇을 믿고 돈을 대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시장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창업자가 처음 가져온 사업계획서도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어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업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새로운 답을 찾아내고, 그 답을 실행할 사람과 자본을 다시 모을 수 있느냐다.


뉴욕의 농구장에서 한 투자자를 만났던 김범석은 13년 뒤 월스트리트의 방송 카메라 앞에서 한국 경제의 기적을 이야기했다. 그 사이 쿠팡은 할인쿠폰을 파는 회사에서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기업으로, 다시 소비자의 문 앞까지 배송을 책임지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쿠팡이 세 번 모습을 바꾸는 동안 투자자들이 끝까지 믿었던 것은 하나다. 사업의 정답이 달라져도 끝내 새로운 답을 찾아내고야 마는 기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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