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고팍스를 품은 바이낸스가 국내 사업의 다음 수를 정해야 할 갈림길에 섰다.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는 방안이 현실화하면 현재 67%에 달하는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데다 고파이 미지급 자산과 완전자본잠식이라는 재무 부담도 여전해서다. 고팍스에 추가 자금과 서비스를 투입해 정상화에 나설지, 지분을 줄이고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일지 바이낸스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28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바이낸스의 특수목적법인 Binance (AP) Holdings Limited는 지난해 말 기준 고팍스 운영사 스트리미 지분 67.45%를 보유하고 있다. 보유 주식은 보통주와 우선주 등을 합쳐 60만2146주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지난해 10월 고팍스의 임원 변경 신고를 수리하면서 바이낸스의 경영 참여를 둘러싸고 장기간 이어졌던 규제 불확실성도 일단락됐다.
하지만 어렵게 넘은 규제 문턱 뒤로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서다. 구체적인 지분 상한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20% 수준이 유력한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만약 20% 상한이 기존 대주주에게도 적용되고 초과 지분을 처분하도록 제도가 마련되면 바이낸스는 산술적으로 현재 보유 지분 가운데 47.45%포인트를 줄여야 한다. 지분율이 20%까지 낮아지면 현재 67.45%의 절대적 지분 우위를 바탕으로 한 지배구조 역시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아직 대주주 지분 제한의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예외, 기존 주주에게 부여할 유예기간 및 초과 지분 처리 방식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당국 역시 지분 상한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소유지분 제한이 실제 제도화될 경우 바이낸스는 현재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경영권을 유지할 방안을 찾거나 국내외 투자자에게 지분을 분산하는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 지난해 가까스로 넘은 규제 문턱이 다시 지배구조 재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바이낸스는 이미 고팍스 지분 매각을 추진한 전력이 있다. 바이낸스는 FIU의 임원 변경 신고 심사가 장기화하자 클라우드 기업 메가존에 스트리미 지분 약 58%를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거래가 성사됐다면 바이낸스의 지분율은 10% 안팎까지 낮아지는 구조였지만 양측 협상은 최종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매각 카드를 꺼내더라도 원매자를 찾는 작업은 녹록지 않다. 스트리미는 고파이 사태 이후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해 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2185억원이다. 새 투자자는 단순히 거래소 지분의 가치만 따질 수 없다. 고파이 관련 대규모 부채가 남아 있는 스트리미의 재무구조와 향후 추가 자본 투입 가능성까지 함께 감안해야 한다.
◆1354억 고파이 미지급금, 매각에도 ‘짐’
지분 재편의 최대 변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고파이 문제다. 고파이는 고팍스가 판매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로 운용사인 제네시스글로벌캐피탈이 2022년 11월 출금을 중단하면서 고객 자산이 묶였다. 바이낸스는 2023년 고팍스를 인수할 당시 산업회복기금(IRI)을 활용해 고파이 피해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지만 상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스트리미가 재무제표에 반영한 가상자산 미지급금은 1354억원이다. 전년 말 1479억원보다 125억원 감소했지만 여전히 스트리미의 연간 영업수익을 크게 웃돈다. 지난해 말 기준 미지급 자산에는 비트코인 777개와 이더리움 5757개, 비트코인캐시 6418개 등이 포함됐다.
가상자산 미지급금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가상자산 수량을 기준으로 상환 의무가 남아 있어 가격 변동에 따라 원화 평가액도 크게 달라진다. 상환에 필요한 가상자산 가운데 추가로 시장에서 확보해야 할 물량이 있다면 가격 상승은 실제 조달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스트리미가 131억원의 순이익을 냈음에도 재무구조가 안정됐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바이낸스 역시 고파이 문제와 재무적으로 얽혀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리미는 고객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바이낸스와 토큰스왑계약을 맺고 가상자산을 빌렸다. 지난해 말 바이낸스 관련 단기차입금은 가상자산 차입금과 외화차입금을 합쳐 731억원에 달한다. 바이낸스가 지분 매각에 나서더라도 고파이 미지급금과 바이낸스 관련 차입금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는 거래가격과 구조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키울지 줄일지…바이낸스 선택기로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계속 품고 간다면 해야 할 일도 적지 않다. 지분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이에 맞춰 지배구조를 손질하는 동시에 고파이 상환과 자본잠식 해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거래량과 이용자를 되살릴 서비스 경쟁력까지 보여줘야 한다. 바이낸스 오더북과의 연계나 글로벌 유동성 공급, 공동 상품 출시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 구체화된 사업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다.
반대로 지분을 줄인다면 새 투자자를 찾는 것이 첫 관문이다. 고팍스의 사업성과 재무 부담을 감수할 투자자를 확보해야 하는 데다 새로운 대주주가 등장하는 거래구조라면 관련 신고와 금융당국의 심사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매각 상대와 거래구조를 마련하더라도 실제 경영권 재편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결국 바이낸스 앞에 놓인 선택지는 고팍스를 키우거나 지분을 줄이는 쪽으로 압축된다. 추가 자금과 글로벌 서비스를 투입해 거래소 경쟁력을 끌어올릴지, 지분 규제 가능성에 맞춰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일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고파이 미지급 자산과 완전자본잠식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바이낸스의 국내 사업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다.
업계 관계자는 "고팍스는 고파이 미지급 자산 상환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고파이 문제가 해결돼야 이용자 신뢰를 회복하고 바이낸스와의 사업 협력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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