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의 성과는 숫자로 평가된다. 하지만 목표를 낮게 잡거나 시행 전 성과를 인정한다면 높은 점수가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민원이 늘어난 업권에서 평가대상이 줄어든 사례도 있다. 딜사이트는 금융당국이 정책·감독 성과를 재는 ‘잣대’가 실제 수요와 효과,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한영훈 기자] 금융위원회가 올해 채무자대리인 선임 8911건을 전제로 예산을 편성하면서도 사업 성과목표는 4312건으로 잡았다. 예산상 지원 물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4%만 채워도 목표를 달성하는 구조다. 예산에는 지난해 급증한 지원 수요를 반영한 반면 성과목표는 최근 5개년 실적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두 숫자 사이에 두 배 넘는 격차가 벌어졌다.
채무자대리인 지원은 불법사금융 피해자에게 변호사를 연결해 주는 사업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가 채무자를 대신해 불법추심에 대응하고 필요한 소송을 지원한다.
29일 금융위의 ‘2026년도 세출사업별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올해 채무자대리인 선임비는 18억5348만8000원이다. 금융위는 8911건을 지원한다는 전제 아래 건당 20만8000원을 적용해 예산을 산정했다.
8911건이라는 사업 물량은 2025년 1~7월 지원 실적 5198건에서 출발했다. 당시 월평균 지원 건수는 743건이었다. 금융위는 이를 1년치로 환산해 지난해 나타난 지원 증가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필요한 재원을 계산했다.
같은 사업에 적용한 성과평가의 잣대는 달랐다. 사업설명자료에 실린 성과지표 ‘채무자대리인 법률구조 실적’의 올해 목표는 4312건이다. 성과지표의 측정 산식 역시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건수’다. 예산과 성과평가 모두 같은 선임 지원 건수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예산상 사업 물량은 8911건, 성과목표는 4312건으로 두 배 넘게 차이가 났다.
차이를 만든 것은 산정 기준이다. 금융위는 국회 지적사항에 대한 후속조치에서 올해 관련 예산에 대해 “2025년 크게 늘어난 수요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반면 성과목표는 최근 5개년인 2021~2025년 법률구조 실적과 예산을 고려해 정했다. 예산에는 가장 최근의 수요 증가세를 반영하면서 성과평가에는 과거 5년간 실적을 적용한 셈이다.
이 때문에 올해 성과목표는 예산을 편성할 당시 이미 확인한 지난해 7개월치 실적에도 못 미친다. 목표 4312건은 2025년 1~7월 지원 실적 5198건보다 886건 적다. 지난해 연간 지원 실적 1만1083건과 비교하면 38.9% 수준이다. 지난해 목표 3911건보다는 401건(1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낮게 설정된 목표는 높은 달성률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제시한 2025년 채무자대리인 법률구조 실적의 목표 달성률은 283.4%다. 목표 3911건보다 훨씬 많은 1만1083건을 지원하면서 목표를 세 배 가까이 초과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실제 신청 수요에 대한 지원 비율은 91.1%였다. ‘목표를 얼마나 초과했는지’와 ‘접수된 수요에 얼마나 대응했는지’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성과목표가 낮을수록 달성률은 높아지는 만큼 283.4%라는 목표 달성률만으로 사업이 실제 수요에 얼마나 대응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성과평가의 또 다른 한계는 지원 이후 실제 피해구제 결과가 성과지표에서 빠져 있다는 점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2026년도 금융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채무자대리인 지원 사업이 실제 피해구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도 사업 운영은 이미 단순 선임에서 피해구제 결과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넓히고 있다. 올해부터 채무자대리인 선임 이후 1개월 차와 5개월 차에 실제 추심이 중단됐는지를 조사한다. 재추심이 확인되면 법률구조공단이 경고문자를 보내고 금감원·수사기관과 연계해 추가 대응하도록 했다. 불법추심이 계속될 경우 다시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지원 횟수 제한도 폐지했다.
사업 운영의 초점은 ‘몇 건을 선임했느냐’에서 ‘불법추심이 실제로 멈췄느냐’까지 넓어졌지만 공식 성과지표는 여전히 선임 지원 건수에 머물러 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해도 불법추심이 실제 얼마나 중단됐는지, 이후 재추심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는 현재 성과표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예산과 성과평가가 같은 선임 지원 건수를 기준으로 하는 만큼 최근 수요를 반영한 예산과 과거 5개년 실적을 토대로 한 성과목표 사이의 간극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심 중단률이나 재추심 발생률 등 피해구제 결과까지 성과지표에 담아야 목표 달성률이 실제 정책 성과를 얼마나 반영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산을 산정할 때 이미 최근 지원 수요 증가를 반영했다면 성과목표 역시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사업 운영도 피해구제 결과까지 확인하는 방향으로 바뀐 만큼 성과평가 체계도 이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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