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경쟁은 이제 대형 언어모델(LLM)의 성능 경쟁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등 인프라 확보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가 전력과 에너지 인프라로 이어지면서 산업 구조와 자본의 흐름, 기업의 투자 전략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2026 경영전략 써밋’을 통해 AI 인프라 확장이 산업과 자본시장에 가져올 변화와 기회를 심층 분석했다. AI 전력 슈퍼사이클 시대, 국내외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준비하는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변한석 기자]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가 하드웨어에 치우쳤으며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함께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인공지능(AI)에서 창출되는 가치 중 모델과 소프트웨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관련 분야에도 투자를 배분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피지컬 AI 1강을 위해서는 한국의 제조데이터를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승현 라이너 AI 에반젤리스트 겸 한양대 겸임 교수는 서울 서대문구 딜사이트 사무실에서 열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3대 프로젝트에는 소프트웨어가 빠져 있다”며 “투자 재원도 모델과 애플리케이션 분야에 배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AI는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간 경쟁 순위를 바꾸는 기술로 부상했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과거 핵무기는 세력 전환 기술이었지만 범용기술은 아니었고 인터넷은 범용기술이었지만 세력 전환 기술은 아니었다”며 “AI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어 훨씬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AI라는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반도체와 AIDC, 피지컬 AI에 집중하는 방향은 긍정적이다. 다만 현재 3대 메가프로젝트가 하드웨어와 제조업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AI가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모델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함께 키워야 한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AI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모두 국내에 남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규모 투자계획을 미리 확정하는 방식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6월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SK가 밝힌 국내 반도체·AI 관련 장기 투자계획은 각각 2655조원과 2100조원으로 총 4755조원에 달한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우리 경제 규모로 보면 굉장히 큰 금액”이라며 “이 정도 투자를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도 비교 대상으로 거론했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이 추진하는 스타게이트는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에 4년간 5000억달러를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현재 발표된 투자 계획이 국내 경제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크다며 “파격적인 투자를 통해 산업을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 여파가 얼마나 클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 번에 거대한 투자 규모를 확정하기보다 일정 규모부터 먼저 빠르게 투자하고 수요와 기술 변화를 보면서 늘려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AI 정책 전반에는 ‘연속성’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정권 교체 때마다 기존 정책이 끊기고 유사한 사업을 다시 설계하는 구조로는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지난 정부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3년 넘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을 맡았다. 그는 공공 AI 전략과 플랫폼 정책을 담당했다. 그는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가운데 필요한 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어져야 한다”며 “AI 정책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역시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큰 방향을 유지하되 향후 기술과 시장 상황에 맞춰 세부적인 규모와 방식은 꾸준히 조정해야 한다. 정책 담당자의 잦은 순환보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꼽았다. AI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 담당 공무원이 1년 안팎으로 교체되면 업무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비되고 전문성을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AI는 몇 달 사이에도 상황이 달라지는데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 정책 파악이 되지 않는다”며 “최소 2~3년 정도는 한 분야를 책임지면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AI 정책을 담당하는 인사가 여러 해 동안 같은 업무를 맡으면서 글로벌 AI 선도기업과 관계를 쌓고 전문성을 확보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 역시 AI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정책 담당자가 일정 기간 책임지고 정책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한국의 피지컬 AI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부가 제시한 피지컬 AI 글로벌 1강 목표는 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하기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 중심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도체와 조선, 디스플레이, 자동차 같은 최첨단 제조데이터를 가진 국가는 많지 않다”며 “한국은 제조업 기반이 있고 산업 현장에서 로봇 활용률도 높은 나라”라고 설명했다.
피지컬 AI는 대형언어모델(LLM)과 달리 실제 물리 세계의 데이터가 중요하다. 공장과 제조설비가 어떤 환경에서 움직이고 돌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AI 모델과 GPU에 강점이 있고 한국은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 등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을 피지컬 AI 분야의 단순 경쟁국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모델·GPU와 한국의 제조데이터를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국내 모델도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다. 피지컬 AI 경쟁에서도 하나의 기술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모델과 자원을 선택해 활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역량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이 같은 접근이 한국이 나아가야 할 소버린 AI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그는 “소버린 AI는 단순히 국산 모델만 쓰자는 뜻이 아니다”며 “좋은 해외 모델도 사용하면서 우리 모델도 같이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소버린 AI는 국산 모델을 보유하는 것 자체보다 실제 사용을 통해 데이터와 운영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국산 AI 모델의 실제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 과제다. 모델 성능 자체가 높더라도 이용자가 부족하면 서비스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에반젤리스트는 “AI 경쟁은 이제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며 “경제와 안보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현 에반젤리스트는 현재 한양대 에리카 글로벌문화통상학부 겸임교수,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겸임교수,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맡고 있다.
한편 이승현 에반젤리스트는 오는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릴 딜사이트 '2026 경영전략 써밋'에서도 관련 내용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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