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태광산업이 최근 호반건설이 즐겨하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방식을 벤치마킹하며 시장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형 매물에 잇따라 참전해 실전 역량을 다지는 한편, 조건이 맞지 않으면 최종 단계에서 협상을 중단하는 방식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태광의 최근 시장 퍼포먼스는 과거 호반이 그룹의 사세를 키우던 초기의 시행착오 모습과 꼭 닮아 있다는 분석이다. 태광산업의 전방위 M&A는 외부 출신 전략 전문가인 정인철 공동대표가 이끌고 있다.
1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의 최근 행보는 과거 호반건설이 대형 M&A 시장에서 체급을 불려 나간 방식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호반건설은 주택 사업으로 축적한 대규모 현금을 실탄 삼아 금호산업·동부건설·SK증권·대우건설 등 다양한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5년 이후 15건 이상의 입찰에 참여했지만 이중 9건을 중도 철회해 시장에서 간보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호반은 실리를 중시하면서 모든 딜에 있어 정밀 실사와 철회 과정을 반복하며 M&A 실무 역량과 협상력을 다졌다. 거듭된 탐색전을 통해 쌓은 역량은 결과적으로 빛을 발했는데, 그 결실이 2021년 대한전선 인수와 2022년 한진칼 지분 투자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성공적인 M&A 투자 전략은 그룹의 외형을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오랜 기간 대형 M&A를 쉬었던 태광산업 역시 실사부터 밸류에이션, 자금 조달, PMI(인수 후 통합)까지 사내 M&A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딜 수행 역량을 다시 축적하고 있다. 태광은 최근 수차례 거래에서 잦은 중도 철회 결정을 내리면서 시장의 눈총을 감수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후퇴가 검증 과정의 노하우로 축적됐고 M&A 실전 체력을 다져가는 단계라는 자평으로 이어진다.
태광의 적극적 행보의 중심에는 외부 출신 M&A 전문가인 정인철 신임 공동대표가 있다. 정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사인 모니터그룹과 AT커니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근무한 뒤 대림코퍼레이션 전략기획 총괄, STX그룹 기획조정본부장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바이오제약사 CG인바이츠 대표 등을 거쳤고 전략·M&A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정 대표는 지난해 7월 미래사업총괄 부사장으로 태광에 합류했고 지난 4월에는 신임 공동대표에 오르며 입지를 굳혔다. 현재 태광산업은 이부의 대표가 기존 석유화학·섬유 사업의 내실을 다지고, 정 대표가 신사업과 M&A를 전담하는 투톱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석유화학 중심의 B2B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소비재와 헬스케어 등 B2C 영역으로 외형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태광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신사업 확장 등을 주문하면서 영입한 인사가 정 대표라는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 대표의 첫번째 가시적인 성과는 애경산업 인수 성공이다. 태광산업은 티투PE, 유안타인베스트먼트와 컨소시엄을 꾸려 애경산업 지분 63%를 인수하며 화장품·소비재 시장에 진입했다. 애경산업은 이호진 전 회장 이후 이 그룹을 이어받을 2세 가운데 장녀 이현나 씨의 몫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현나 씨는 그룹에서 아직 직책이 없지만 티시스 0.55%, TRN 1.24%, T2PE 9%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정인철 대표는 이후 동성제약 인수를 비롯해 호텔, 조선, 부동산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한편, 시장에 나오는 다수의 매물에 전방위적인 태핑(인수 타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의 장남 이현준 씨에 맡길 특별한 매물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이현준 씨는 1994년생으로 학업에 몰두하는 중으로 임원·경영 직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현준 씨는 티시스 지분 11.3%, TRN 지분 39.36%, 대한화섬 3.15% 등을 보유하고 있고, T2PE 지분 9%도 개인 명의로 갖고 있다.
정 대표는 무리한 베팅은 지양하는 기조가 뚜렷하다. 이호진 전 회장은 무리한 외형 확장 대신, 철저한 실사를 거쳐 현실적인 실익을 꼼꼼히 따져보라는 보수적인 투자 원칙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격적으로 매물을 들여다보되, 리스크와 가격 조건이 맞지 않으면 멈춘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단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를 입증해야 하는 정인철 대표의 입장에서는 사내의 이 같은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기조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인 영토 확장을 이끌어야 하는 M&A 추진 라인과, 보수적인 잣대로 잠재 부실을 차단하려는 리스크 관리 기조가 부딪치면서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스마트폰 부품사 넥스플렉스 인수 철회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B2C 소비재(애경산업)와 달리, 첨단 하드웨어 소재 기업인 넥스플렉스는 애플 단일 고객사 편중 리스크와 확장성에 대한 기술적 검증이 요구됐다.
태광은 정밀 실사를 거쳤지만 리스크 대비 밸류에이션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직전 매각 측에 가격 조정을 요구했다. MBK파트너스와 눈높이를 좁히지 못하자 결국 철회를 통보했다. 과거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전 당시 해외 부실을 확인한 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내려놓았던 결정과도 유사한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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