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로테르담=송한석 기자] LG전자가 유럽에서 가전제품을 한 대씩 판매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가전과 인공지능(AI)홈, 냉난방공조(HVAC), 에너지 관리까지 하나의 주거 공간으로 묶는 ‘공간 솔루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가 찾는 가전 매장에서는 실제 집을 구현해 여러 제품을 함께 체험하도록 하고 B2B 시장에서는 히트펌프와 온수 솔루션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제품 경쟁을 넘어 고객이 생활하는 ‘공간’ 전체를 LG전자의 사업 영역으로 가져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7일(현지시각)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미디어마크트 테크 빌리지 로테르담’에 있는 LG전자 매장은 냉장고와 세탁기 등이 줄지어 늘어선 일반 가전 매장과 달랐다. 약 73㎡(22평) 공간 안에 주방과 거실, 다용도실을 갖춘 실제 유럽 가정의 모습을 구현했다.
제이 로머스 LG전자 베네룩스법인 마케팅 책임은 “개별 제품의 장점보다 LG라는 브랜드가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다”며 “가전을 포함한 다양한 기기들을 일상에서 어떻게 사용하면 어떤 편리함이 있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가 이곳에서 택한 전략은 제품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 집과 비슷한 공간 안에서 각각의 가전이 어떻게 연결되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제 성과도 나타났다. LG전자는 지난해 11월 이 매장을 기존 약 28㎡(8평)에서 약 73㎡로 3배 가까이 확대하면서 제품 진열 중심에서 생활 공간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다. 이후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현재 네덜란드 내 LG전자 오프라인 매장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공간 안에서 여러 제품을 함께 보여주면서 단일 제품보다 패키지 형태로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이 매출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테크 빌리지 로테르담’에 입점한 10여개 브랜드 가운데 매장 내부에 주방과 거실, 다용도실 등 실제 가정 환경을 구현한 곳은 LG전자가 유일하다.
매장에 들어서면 빌트인 오븐과 인덕션, 식기세척기부터 냉장고와 세탁기 등 고효율 가전이 하나의 집 안에 배치돼 있다. 여기에 LG전자의 AI홈 플랫폼 ‘LG 씽큐(ThinQ)’와 스마트홈 플랫폼 ‘호미(Homey)’를 연동해 각각의 제품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예컨대 전기요금과 태양광 발전량을 고려해 세탁기 작동 시점을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세탁이 끝나면 거실 조명이나 소리를 통해 이를 알려주고 창문을 열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에어컨을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로머스 책임은 “사용자가 앱을 확인하거나 직접 설정을 바꿀 필요 없이 집이 주변 상황에 지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네덜란드는 인구밀도가 높고 공간이 제한돼 주택 가격도 비싸다”며 “이에 따라 집이 상대적으로 작고 소비자들은 제한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고 밝혔다.
LG전자의 공간 전략은 B2C 가전 매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네덜란드 리더케르크의 102세대 신축 아파트에서는 공간 솔루션이 B2B 사업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LG전자의 공기열원 히트펌프 냉난방 시스템 ‘써마브이(Therma V)’와 지난해 LG전자가 인수한 노르웨이 프리미엄 온수 솔루션 업체 OSO의 스테인리스 버퍼탱크가 함께 적용됐다. LG전자가 히트펌프와 스테인리스 버퍼탱크를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한 유럽 첫 수주 사례다.
써마브이는 화석연료 대신 외부 공기의 열에너지를 이용해 냉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 LG전자의 고효율 인버터 스크롤 컴프레서를 기반으로 투입 전력의 약 4~5배에 해당하는 열에너지를 만들어내며 화석연료 보일러와 비교하면 에너지 소비를 약 40~60%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버퍼탱크를 붙이면서 히트펌프를 단순히 한 대 공급하는 것에서 사업 구조가 달라졌다. 난방 수요가 변할 때 히트펌프가 반복적으로 켜지고 꺼지는 것을 줄이기 위해 버퍼탱크가 일정량의 난방수를 저장하고 공급한다. 이를 통해 컴프레서 등 주요 부품의 부담을 줄이고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기존에는 건설사가 히트펌프와 버퍼탱크 업체를 각각 선정해 발주하고 관리해야 했다. LG전자는 두 제품의 용량부터 배관과 제어 방식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하면서 시공과 사후관리까지 묶었다. 가전에서 시작한 ‘공간 솔루션’ 전략이 B2B에서는 냉난방과 온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확장된 셈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2050년까지 약 700만가구와 100만개 건물을 대상으로 가스 사용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세운 점도 LG전자에는 기회다. 신규 주택은 기본적으로 가스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히트펌프 설치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보조금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LG전자는 현지 설치 인력 부족에 대응해 무료 교육·인증 프로그램인 ‘LG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10년 이상 이어진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1만명 이상의 설치 기사를 교육했다.
LG전자는 이미 프랑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5개국 10만가구 이상에 히트펌프를 공급했고 북마케도니아의 1500여가구 규모 주거단지에도 제품을 공급했다. 독일에서는 현지 설치업체와 협력을 확대하고 영국에서는 전력 공급사 옥토퍼스 에너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유럽 내 사업 기반을 넓히고 있다.
로빈 클라우스 LG전자 베네룩스법인 ES사업 리더는 “유럽 고객의 요구도 보다 편리하게 냉난방과 온수, 열저장과 제어를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으로 바뀌고 있다”며 “버퍼탱크뿐만 아니라 다양한 탱크 라인업과 히트펌프를 결합한 온수 솔루션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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